셋째 날은 방콕에서 기차로 약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아유타야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아유타야는 태국의 역사를 간직한 고도로 14세기 중반부터 거의 400년 동안 태국의 수도이자 동남아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곳이다. 우리나라의 경주와 비슷하다.
이날은 기차 시간 때문에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를 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봤자 8시 30분에 나갔음. 아니 왜 아침밥을 9시부터 주는 건데요!)


일반 열차는 비지정석으로 운행하는 열차였다. 못 앉을까 봐 걱정했는데 어중간한 시간 덕인지 열차 안에는 스님 무리 외엔 승객이 별로 없었다. 마주보는 좌석에 동행인과 앉고 역사 베이커리에서 사온 초코빵을 먹고 있자니 어느덧 바깥 풍경이 소란스러운 도심을 벗어나 천천히 시골이 되어가고 있었다. 참 언제 어디서 겪어도 나른하고 설레는 변화다. 그 어떤 덧창도 안전장치도 없이 쌩으로 활짝 열린 (그리고 닫을 수 없는) 객실 창문을 통해 들이닥치는 거센 바람과 시끄러운 기찻소리만 아니었더라면 깜박 잠에 들었을 법한 평화로운 여정이었다.



물론 사소한 문제는 있었다. 우리는 역에서 바로 내려서 보트를 탔어야 했다. 그걸 몰라 땡볕 아래 먼 길을 돌아 두 다리로 짜오프라야 강을 건넜다. 하지만 그 덕분에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이 있었으니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었지만 역시 아무거나 먹을 수는 없기에 ^^ 주린 배를 붙잡고 현지에서 유명한 고기 국수집부터 찾아갔다. 찾아간 보람이 있게 진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이 어우러진 훌륭한 소고기 국수를 맛볼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는 디저트로 빙수(부아로이?) 하는 데를 찾아 나섰다. 비주얼은 정말 재미있었지만 맛은 평범했다.



동선 에러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 자전거를 빌렸다. 땀이 뻘뻘 나서 지쳐 있었는데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니 시원하고 신이 났다. 정말이지, 경주든 아유타야든 자전거를 타고 고대 도시의 구석구석을 탐험한다는 건 현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인 액티비티 중 하나일 것이다. 처음에 동행인이 자전거로 아유타야를 다니자고 해서 너무 힘들지 않을까 싶어 소극적으로 만류했었는데 자전거로 돌아다니길 정말 잘했다 싶다.





곳곳에 아무렇게나 흩어진 높이 솟은 다 무너진 탑들과 여적 위엄과 관대함을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불상들이 과거 이 왕국이 누렸던 번영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알려주었다. 아유타야가 한때 동남아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아유타야 중심부에는 주 유적지는 아니지만 아래와 같이 호수를 끼고 조성된 공원이 있었는데 자전거로 달리기에 아주 한적하고 운치 있고 좋았다. 투어로 왔다면 이런 데는 절대 알지도 오지도 못했겠지… 보람차다.


얼마 머물지 않았던 거 같은데 여기서 정말 쏜살같이 시간이 흘렀다. 호수 공원에서 하하호호 자전거 타다가 시간을 보고 부랴부랴 추슬러서 다시 주 유적지로 핸들을 돌렸다.
아유타야의 주 유적지 사원은 7~8개 정도 되었는데 솔직히 이름은 하나도 못 외웠다. 다만 모양과 왓 어쩌고라는 것을 기억할 뿐이다. 그래도 바이크 대여하면서 가보면 좋다고 한 4곳은 다 가봤다. 아래와 같은 기묘한 피라미드 외관의 사원도 그중 하나다.


아유타야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해질녘이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한 사원의 폐허가 저녁 노을에 물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과장 안 보태고 리터럴리 시간이 멈춘 듯 숨 막히게 아름다웠다. 너무 아름다워서 카메라로 그 모습을, 그 모습에 묻은 스스로의 모습을 정신없이 찍기만 했다. (자전거를 돌려줘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기도 했고;)





진짜 마감시간에서 겨우 2분인가 남기고 자전거를 반납하는 데 성공하고, 사적에 갈 때는 타고 오지 못했던 짜오프라야 강을 건너는 보트를 기어이 탈 수 있었다. 겨우 몇 분가량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신났다. 배 운전사가 딱 봐도 멋진 할머니라 왠지 더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역시 사람이 기술이 있어야…
그러고 나선 사진이 바로 방콕으로 돌아와 먹은 해물 만찬으로 점프한다. 사실 아유타야에서 방콕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기다리면서 먹은 용과 스무디랑 파파야 스무디도 맛있었고 올 때와 달리 사람들로 가득한 기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았던 것도 매우 기억에 남았으나 진짜 엄청 지쳤던 것인지 사진이 하나도 없다.
아무튼 어김없이 현지인의 맛집을 찾아 가 먹은 해물 만찬은 방콕에서 내가 먹은 음식 중 가장 훌륭한 만찬이었다. 원래 해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단순한 재료를 쓰는데도 맛이 굉장히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해 먹는 재미가 참 좋았다. 이게 다 풍부한 향신료 덕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돌이켜보면 이동수단을 참 다이나믹하게 이용한 날이었다. 택시를 타고 기차역까지 가서 기차를 탔다가, 자전거에서 보트를 탔다가 다시 기차로, 택시로 마무리했으니까.
그리고 해물 만찬 후 레몬그라스 주스 이후 두 번째로 태국 음식에 거리를 두게 된 부아로이를 먹게 되었는데… 으악 너무 늦게 쓰기 시작했더니 어느덧 두 시가 넘어가고 있다. 이 여행기는 여기까지. 얼른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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