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지적 자극이라니

잠도 안 오는데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또 짜증이 났고 댓글을 달려다가 그만두고 여기에다가 토로해본다.

기적적으로, 지금 한국에서 이뤄지는 휴먼 스케일의 사회담론은 거의 페미니즘과 관련되어 있는 듯하다. 확실히 화제가 되는 신간 도서들을 보면 그런 흐름이 있다. 그래서인지 사회의 중요한 논쟁들에 기꺼이 한 자리를 담당해왔던 오래된 지식인 분들이 페미니즘 이슈에 냉철한 분석 한 마디 보태고 싶어 안달 나 계시는 것 같다. 뭔지는 알겠다. 너무 소소해서 시시하게 느껴지는 다원주의적 담론이 아니라 이런 휴먼 스케일의 치열한 사회담론 물론 반갑겠지. 오랜만에 주어진 지적 자극에 절로 신이 날 수도 있겠지. 더 나아가 그동안 제3세계 지식인으로서 수입해 쓰던 휴머니즘 등을 실제 우리 사회에서 구축하는 물꼬가 되어 줄 것도 같고…

하지만 그전에 정상 휴먼으로서, 기득권자로서 선명하게 드러난 사회적 약자의 취약함을 개선하는 게 응급하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 최소한 여성이 폭력, 특히 남성에게 당하는 물리적 폭력에 취약하고 그 폭력이 사회적으로 묵인되고 무시되어 왔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 젠더 범주를 이용하기에 앞서 폭력의 구조를 피상적으로나마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는가? 인종차별 철폐 후 백년 이상 모든 공공영역에서 강제로 인종 비율을 맞추고 강박적으로 차별 발언을 범죄시 해왔던 미국에서도 아직도 인종차별이 선명한데. 어떻게 다른 곳도 아니고 한국에서, 벌써 남성과 여성을 동등한 논의의 범주로 놓을 수 있나? 남성과 여성은 형식적으로나 반의 관계지 실제 여성이 남성의 잉여 개념에 불과하다는 거 너무 분명하지 않나? (그런데 생식기 모양과 성호르몬 작용으로 좌지우지되는 사회가 주는 선천적 이득을 받으며 사는 게 그렇게 좋은가? 이득 받아 본 적이 없으니 모를 일이지만 그닥 자랑스럽진 않을 것 같은데…)

차라리 네이버 댓글은 아예 전제부터 공유 안 되어버려서 별 타격 안 받는데, 정말 알 만한 분들이 그러니까. 왜들 그렇게 자기 생전에 모든 중요한 사회적 논의를 전개하고 결론까지 보고 싶어 하는 걸까. 침착해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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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자극이라니” 글의 댓글 3개

  1. H

    내가 문장을 잘못 이해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수천 년 적립한 빚을 청산하는 게 좋겠다는 너의 글을 읽고, 언젠가 한 번 이야기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조금의 부끄러움과 관계에 대한 걱정이 있어서 익명을 빌어 몇 자 적어본다. 버스 이동 중에 휴대전화로 작성하고 있는데다가, 애초에 글을 잘 쓰지 못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글에서 색을 빼려고 하니 더 엉성해졌지만, 너라면 잘 읽어낼 수 있겠지.

    전제나 문제의식과 관련된 부분은 전반적으로 동의해. 어쩌면 하나의 그룹으로 묶이는 만큼, 너와 나의 경험, 그리고 주변에서 보고 듣는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 당연한 일이겠지. 하지만 해결 방법은 지금과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야. 본문에 언급된 것처럼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했지만, 그 결과가 신통치 않았고 오히려 부작용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 최근 미국의 일부 학계에서는 흑인에 의한 백인혐오에 대한 논의까지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그동안은 약자의 강자에 대한 혐오는 불가능하다는, 너무도 쉽게 통용되는 논리에 의해 금기시되던 주제였지. 하지만 그 논리로는 실제 발생하는 사건들을 설명할 수 없었고, 그것이 누적되다 보니 물고 물리는, 혐오가 혐오를 낳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 관습적 혐오는 줄었지만, 감정적 혐오는 되려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니, 비극이지. 그리고 같은 관점으로 진행된 유럽의 이슬람 이민자 정책도 완벽하게 실패했고. 여성주의 역시 마찬가지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예가 있어. 여성주의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정착되었으며, 높은 수준의 성 평등을 이룬 스웨덴에서 진행된 여론조사를 보면 전체 남성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여성주의를 남성에 대한 억압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해. 반이민, 반이슬람, 반여성주의를 외치는 민주당의 높은 지지율과 성비(여성의 지지율도 매우 높은 편)도 유의미한 고려대상. 반면 비슷한 수준의 성 평등 국가이지만, 일부 여성주의자들에게 여성주의의 무덤이라고까지 불리는 덴마크에서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어. 남성의 여성주의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극우 정당도 상대적 약세이고.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말하는 여성주의는 교과서적인 여성주의와 다르고, 수많은 비 여성주의자(반 여성주의자가 아닌)가 가장 가까이서 접하는 여성주의와는 더 큰 괴리가 있다는 점. 게다가 학문으로써의 최신 경향은 본문과 같이 여성, 남성 일반을 구분하는 젠더론적 접근과는 거리가 매우 멀기까지. 그러나 여성주의 관련 발언력이 있는 개인과 단체, 언론에서는 여성주의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고, 이러한 부분도 비 여성주의자가 일선에서 접하는 여성주의의 모습의 하나겠지. 때문에, 네이버의 끔찍한 댓글들은 단순히 전제의 공유나 문제의식을 떠나서 해결 방식의 실패로 인한 결과라고 생각해. 앞서 언급한 사회에서 나타난 실패의 사례와 거의 비슷한 모습이거든. 전제와 문제의식이 올바르고, 목표로 하는 결과도 좋지만, 지금까지 사용해온 해결 방식에 결함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오류를 인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 조금 늦은 감이 있네. 지미 오케손과 바이델, 그리고 트럼프까지, 네이버 댓글과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탄생한 악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나도 더 나은 해결 방식까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앞서 나간 나라들이 실패한 길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 그리고 그 답습에 침묵을 요구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건 확신해. 내가 아는 너는 실시간의 충격에는 약하거나 다소 조급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사회 문제에 대한 분석(?) 같은 분야에서는 누구보다도 침착하고 냉소적으로 접근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의 모습, 들려오는 말들, 그리고 글들은 조금 낯설다. 안식을 위해 찾는 공간일 텐데 방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파악될까 걱정도 되어서 등록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 중. 내가 읽어도 어설픈 논리와 글이니 화를 돋우거나 비웃음당하려나 싶기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간단히 삭제해버려도 좋아. 단지 본문의 결론처럼 네가 침착함을 되찾았으면 좋겠어. 그뿐이야. 결론을 위해, 일단 클릭.  

    1. 아이고 너무나 누군지 알 것 같은데 댓글 달아줘서 고맙습니다! 흑흑 이 블로그를 누군가 보고 있었어… 현재 상해에 워크샵을 와 있어 길게 남기진 못해서 귀환해서 생각난 것들을 남기겠소

    2. 김희연

      일단 1)나의 캐릭터를 고려해주어 고맙습니다(?). ㅠㅠ 내가 과거 사회문제에 침착하고 냉소적이라고 느꼈다면 아마 내가 은연중에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안전하게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듯합니다. 내 입장을 정할 정도로까지는 관심이 없고 잘 몰라서이거나. 그게 모조리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어떤 문제는 나중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이를테면 생태 환경 관련 문제 같은 경우 내가 알게 된 만큼 가져야 했던 관심 정도를 가지지 못했던 것에 지금도 부끄럽고 그렇슴. 휴. 아무튼 그런 면에서 요즈음의 페미니즘 이슈들은 당사자성이 명백하여 게으른 나조차 외면하기 어려웠음. 그래서 비교적 적극성을 가지게 된 듯. 혹여 목소리를 내는 게 좋아서 목소리를 낸다고 오해하진 말아줬으면. 왜냐하면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건 실제 한국 현실에서 부당한 위협에 노출되는 일이오. 2)본문에서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을 섣불리 등치시킨 바람에 혐오 이야기로 이해된 것 같은데 나는 그 둘이 혐오라는 맥락에 있다기보다는 배운대로 소박하게; 사람은 태어난 조건으로 차별받지 말아야 하고 가능한 평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관념을 뻔뻔하게 위배하는 전근대적 매커니즘이며 그걸 용납하면 안된다는 맥락 하에서 생각나서 든 것임. 그것은 만들고자 하는 사회에 대한 합의에 관련된 이야기라고 생각함. 이런 전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듯하지만 써봄. 3)혐오행위의 해악에 관해서도 생각해본 적 있는데 모든 혐오행위가 즉각적으로 비위를 상하게 하는 비합리적인 신경질의 양상을 보인다 할지라도 소수자의 혐오와 다수자의 혐오가 같은 사회적 파급력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음. 일단 개인적 감정의 영역을 사회에서 관할하는 건 종종 오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감정의 사회적 영향력이 가시화되어 그것을 논의해야 한다면 꼭 권력관계에 대한 고찰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나는 소수자의 다수자를 향한 혐오는 종종 다수자의 시혜로서 나의 차별을 타파하고 싶지 않음을 알리는 선언적 행위로 느껴질 때가 많았음. 4)어떤 사회적 문제 해결 시도에 대한 평가는 그것이 목적했던 바가 얼마나 이뤄졌는지 여부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봄. 이펙트와 사이드이펙트 모두 고려하여. 그런 면에서 미국의 인종차별 철폐 시도들이 인종차별에 궁극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주었을까를 따지면 그래도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함. 특히 이후 그런 해결책을 보완해 적용하고자 하는 나라들에게 전범을 마련해주었으니… 물론 드러나지 않게 포섭된 섬세한 차별들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을 찾고 실행해가며 나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음 이상의 두서없는 이야기들이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급 마무리) 다시한번 댓글 달아줘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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