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다 잘하면 좋을 텐데

무언가를 인식할 때 특별히 개별성에 주목하는 사람이 있고 그 무언가의 패턴성(?)에 주목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같은 누군가를 콧망울의 점과 늘어진 눈두덩, 부스스한 머리결, 툭 튀어나온 두 번째 발가락 등의 총합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젊은 스크루지 같은 캐릭터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험적으로 한 사람에게 이 두 가지 인식 방식이 어느 정도는 병존할 수 있고 또 학습될 수도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사람마다 분명하게 주가 되는 성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사소한 부분에서 매력을 발굴해내는 게 콘텐츠의 트렌드인 요즘, 개별성에 주목할 수 있는 능력이 매우 유용해 보인다. 개별성은 무한하고 그래서 무궁무진하게 매력을 생산해낼 수 있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매력이란 게 곧 돈을 벌 꺼리가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 매력이 연약하고 금세 사그라드는 매력일지라도 어차피 또 다른 걸 발굴해내면 되니까… 그게 안 질척하고 쿨하고.

아무튼 오늘 나눈 이야기의 골자는 내가 매우 패턴 인식적인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잘 알고 있다.  나는 각고의 노력 없이 좋아하는 사람의 디테일을 열거해내지 못하고 (애정이 부족한 게 아니다 ㅠㅠ) 어떤 워딩도 정확히 되살리지 못하며 (대신 어떤 의도의 워딩이었는지를 기억한다 ㅠㅠ) 사소한 배려 하나의 가치를 크게 생각하지 못한다. (물론 뒤늦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한다고 이성적으로 판단해내기도 한다. ㅠㅠ)

어쩌면 내가 연예인의 팬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이런 성향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연예인을 보면 그 사람의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세부에 집중하지 않고 어떻게든 보편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인간으로 수렴시켜버리니 결과적으로는 꼭 그 연예인에게 집착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따져보면 결국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기제에는 나와의 상호작용 여부가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짧게라도 함께 집중적으로 뭔가를 했다거나 느슨하더라도 함께 오래 지낸 사람에게만 비로소 애정이 생기게 된다. 그 상호작용의 시간으로 인해 상대에게서 대체 불가능한 맥락을 느끼고, 그제서야 상대가 특별하게 생각되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특별하게 싫어지기도 한다…  근데 만약 상대의 특정 부분이 싫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부분을 발견해서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아주 편할 것 같다. 이혼도 안 할 것 같고. 아니다, 이건 잘 모르겠다. 싫은 부분을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은 인식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겠지. 아무튼 나는 애초에 디테일만으로 좋아하는 그게 안 된다는 걸 오늘 또다시 깨달았다. 옛날엔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젠 안 된다. 상대에게도 피곤하고 나에게도 피곤한 특성이다. ㅠㅠ

사실 나에게도 발목이 얇은 남자면 무조건 좋아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페티시가 참으로 상호 안심할 수 있는 애정의 기제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발목 페티시가 있는 경우 상대에게서 거부당했을 때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발목을 좋아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정신적 안전망일 것이고, 반대로 좋아하는 상대가 내 신체 특정 부분에 집착하는 페티시가 있다면 그게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되는 장치가 되어줄 수 있겠네. 이제서야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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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하면 좋을 텐데” 글의 댓글 2개

  1. ㅅㅎ

    얇은 발목을 좋아했던 거야? ㅎㅎ

    1. 김희연

      예전에는 그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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