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오늘을 견디게 해주는 구절

0호선
– 지하철에서 만난 여자 1

장승리

 

전철 안 귀퉁이에 서서
도루코 칼로 자기 손등에 흠집을 내는 여인
손등 여기저기에 피어나는 붉은 꽃들을
스윽 꺾어 버린다

정해진 역 외에는 열리는 법 없는 굳게 닫힌 문과
인정머리 없이 없어 보이는 문밖의 검은 벽돌
당신도 갑갑한 거죠
상처를 내고 싶은 거죠

우리 함께 전철 위로 올라가
잘 부풀어 오른 이 긴 식빵을
당신의 칼로 먹기 좋게 잘라 볼까요
빵에 내 손등 위로 흐르는 피를 발라
한입에 먹어 치울까요

잘린 식빵 사이로
무수히 쏟아지는 바퀴벌레들
뚫고 나온 어둠 속으로 또다시 도망쳐 버리는
비린내들, 검은 피들

비린내가 진동해도
검은 피가 범람해도
우리 부풀어 오른 식욕 잃지 말기로 해요
끝끝내 다 먹어 치우고서
우리 손잡고 가는 곳마다
보이지 않는 레일이 깔리는 것을 보기로 해요

 

장승리, <습관성 겨울> p.44


‘우리 부풀어 오른 식욕 잃지 말기로 해요’ 부분에서 아주 문자 그대로의 실용적인 위로 얻어 왔다. 장승리 시 정말 좋다.

그리고 미나의 포효를 우리 회사의 이수정에게 전달해주고 싶다.

https://zollida.net/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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