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회사에서 지친 뇌를 쉬기 위해 (그냥 일하기 싫었음) 위키백과의 조봉암 페이지를 읽다 감탄했다. 꽤 잘 정리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옛날에 조봉암을 다룬 책을 봤을 때와는 엄청나게 다른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쯤에서 너무 기본적이지만 되새겨보자. 안다고 이해한 게 아니며, 더 나아가 그 이해의 깊이와 시각은 각자의 경험에 좌우된다는 것을.
아마 대학 시절, 고작해야 위인으로서 조봉암을 대하던 때의 나와 한 인간으로서 조봉암을 생각할 수 있게 된 나는 아주 다른 지반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느 한 쪽을 더 가치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나는 어쩔 수 없이 과거의 나를 우습게 여기게 된다. 얼마나 순진한가!
아무튼 조봉암 묘소 앞 돌에 새겨져 있다는 그의 말이 대단해서 소름끼칠 정도다.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가 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한가?
이것저것 자료를 모아둔 데 불과한 위키백과 페이지에서조차 느껴진다. 조봉암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치열하게 주어진 현실을 인식하고 개혁하며 살아갔는지. (당연히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니 좀 헤매긴 했지만서도…) 그 시대에 살았다면 나는 이 사람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워서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 사람에 날 비춰보면 내가 어떤 위치에 있었든 필연적으로 부끄러워졌을 테니까.
그래봤자 지금으로부터 겨우 60년 전인 1959년, 국가보안법으로 사형이 선고되고 가족과 측근들에게 남겼다는 심경은 어이 없을 정도로 무슨 삼국지연의 속 명장이 죽기 전에 남긴 대사 같다.
법이 그런 모양이니 별수가 있느냐. 길가던 사람도 차에 치어 죽고 침실에서 자는 듯이 죽는 사람도 있는데 60이 넘은 나를 처형해야만 되겠다니 이제 별수가 있겠느냐, 판결은 잘됐다. 무죄가 안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정치란 다 그런 것이다. 나는 만 사람이 살자는 이념이었고 이 박사는 한 사람이 잘 살자는 이념이었다. 이념이 다른 사람이 서로 대립할 때에는 한쪽이 없어져야만 승리가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를 하자면 그만한 각오는 해야 한다.
지난해던가… 회사에서 억지로 갔던 서대문형무소를 다시 가게 되면 아주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안다고 이해한 게 아니고, 눈에 비쳤다고 본 게 아니다, 정말….
지금 찾아보니 시대의창에서는 무려 평전을 냈네. 여긴 송인 사태에 괜찮은지 모르겠다. 조만간 이 책이나 사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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