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를 퀵 소비하고자 빅 퀘스천 강의를 신청했는데 10시에 눈을 떠서 아 정말 가야 하나 하고 고민하다가 그냥 두 번째 정재승 교수 강의부터 듣자 싶어서 털레털레 나갔다. 아무튼 강의 듣기는 생각보다 안 피곤했고 전반적으로는 재밌었다. 혼자 갔다가 갑자기 구미에서 오신 또래 선생님분과 점심을 함께 먹으러 다니는 사이가 되어 번호를 교환한 게 오늘의 가장 즐거운 수확. 아무튼 기억에 남는 내용을 메모해본다.
* 정재승 교수: 왜 우리는 미신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소박(?)한 목표를 가진 과학자셨다. 이 강의를 위해 준비를 열심히 하신 티가 났으나 몸이 좋아보이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아무튼 이 분의 질문은 이거였다. “왜 미신을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미신이 횡행하는지 개괄하는 부분에서 찔리는 게 많았다. 재미로 사주 보고 혈액형 물어보고 이런 거 정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는데…
미신을 믿는 행위는 어떤 일이 확률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울 때 더욱 많이 발견된다고 한다. 이를테면 징크스를 많이 갖고 있는 야구선수는 타자>투수>야수 순인데, 이 순서는 자신이 경기에서 실패할 확률과도 같다고 한다. 이 간극, 성공과 실패의 간극 사이가 클수록 스트레스가 커지고, 그 스트레스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사이에 뭔가 숨겨진 인과관계가 있다고 믿고 싶을 때, 그때 징크스와 같은 것이 등장해 성공과 실패를 관할하는 모종의 인과관계를 만들어낸다는 거다. 수염을 깎으면 진다 같은… 미신이나 음모론(아마 일반 종교까지)을 믿거나 만드는 매커니즘도 과히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신에 대수롭지 않게 반응한다. 나처럼 뭐 사람들이랑 결과를 보고 노는 게 재밌으니 즐기는 사람도 있겠고, 아니 그게 다 이유가 있어서 만들어진 미신이다, 다리 떠는 게 복 달아난다고 하는 말은 그게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니까 나온 거다, 식으로 효용론적인 입장에서 긍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진심으로, 혹시 모르잖아… 그게 사실일지도! 하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사주가 뻥이라고 생각해도 혹시 그게 진짜로 내 삶을 예언할까 무서워서 사주대로 행하게 된다든가.
이 지점에서 정재승 교수는 과학에 나오는 두 가지 에러를 소개한다.
Type 1 error: 없는 걸 있다고 하는 에러
Type 2 error: 있는 걸 없다고 하는 에러
첫 번째 에러는 에러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남들에게 웃음거리나 겁쟁이가 되는 데 그친다. 나뭇가지처럼 생긴 게 아스팔트 위에 떨어져있으면 “으악 뱀이야~~~” 하고 후닥닥 멀어지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아스팔트 위에 뱀이 있을 리 만무하니 첫 번째 에러를 범했고 놀림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희박한 확률을 뚫고 그게 뱀이었을수도 있다. 여기서 두 번째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은 살아남기 쉽지 않다. “에이 그건 그냥 뱀 같은 나뭇가지겠지”라고 치우러 갔다가 뱀에게 죽을 테니까.
정재승 교수는 우리는 겁쟁이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두 번째 오류를 범해 죽느니 차라리 첫 번째 오류를 범하고 안전하게 살겠다는 사람이 솎아져 대를 이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의 디엔에이 속에는 그 겁쟁이의 디엔에이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진짜 뱀인지 확인하려는 사람은 그 디엔에이와 싸워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 무작위에서 패턴성을 발견하는 능력에는 도파민이 관여한다. 도파민이 적당하면 창조성을 발휘할수 있지만 도파민이 지나치게 많으면 환각과 환청을 겪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도파민이 너무 적으면 기본적인 패턴마저도 발견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 일화와 통계를 구별하는 데서 과학적 사고가 출발한다. 회의하는 태도와 열린 마음 두 가지를 견지하는 게 필요하다.
* 은희경 & 신형철: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은: 인간을 패턴으로 파악하는 건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재단하고 일반화하고 계급을 나누는 편견과 선입관에 대해 쓰고 싶다. 나의 작품에는 패턴을 지향하는 흐름과 매혹을 지향하는 흐름 두 세계가 있다. 매혹은 논리가 없기 때문에 쉽게 변하거나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사라진 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 두 세계 중에 어떤 세계를 선택할 것인가? 답은 없다.
신: 혼자 있으면 고독이고 함께하면 고통이라는 말이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 왜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러울까?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기에. 자기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아니기에. 그런데 타인이라는 건 고통이다. 한나 아렌트는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고 말한다. Loneliness Solitude 그러나 고독이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삶의 조건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때, 그 고독의 시간이 많아질 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높아진다. 그 사람의 고독을 존중하는 채로 고독을 의식하는 것, 그것이 고독의 연대다.
신: 모든 사람은 결핍이 있다. 어떤 사람들이 만나면 그 결핍이 심해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람의 결핍은 만나면 완전해지지는 않지만 온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박경철: 행복한 삶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스 로마 신화, 어떤 한 민족의 신화가 근대 교육의 필수적 교양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신기한 일이다. 사실 뜯어보면 어린 잡놈들의 이야기인데. 신들은 지금 기준으로는 아주 양아치다. 신중의 신인 제우스만 봐도 권선징악이 전혀 없다. 아폴론에게 쫓기던 다프네는 나무가 되고 헤르메스 공식적으로 도둑이다. 이게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이다. 왜 이걸 읽힐까? 반면 이솝우화는 늘 교훈적인 이야기다.
이러한 악의 이야기가 왜 세계인의 교양이 되었는가. 심지어는 독일의 경우 그리스 로마 신화가 교과과목으로 있다. 이유는 그리스 신화가 사실 서구 근대 문명의 모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는 인간의 탄생 신화가 독특하다. 중국, 기독교, 등등은 신이 인간을 빚었다… 이런 식이다. 인간은 피조물, 신은 창조자. 이게 보통이다. 그런데 그리스 신화는 다르다. 원래 하늘과 땅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서 신이 태어났고 인간이 이후에 태어났다고 이야기한다. 즉 신과 인간의 관계는 한배에서 나온 형제인 것이다.
물론 인간은 형인 신을 너무 부러워한다. 신은 불로불사, 불멸의 존재지만 인간은 생로병사와 필멸의 존재다. 그래서 형에 빗대어 동생인 인간은 생을 비극적이라고 인식한다. 인간의 저변에서는 신을 닮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지금 노화에 저항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면서 인간의 마지막 욕망, 그 저변의 욕망의 종착점이 헬스케어 열풍으로 나타나고 있다. 바이오 산업이 아주 살짝 문을 열었다. 안티 에이징 산업은 조금만 있으면 인간의 모든 역량이 그곳에 모두 투여될 것이다.
일리아드는 얼마나 놀라운가! 신의 방해를 뚫고 승리하는 인간이라니! 고대의 키워드는 운명이다. 고대인의 기본적인 시각은 운명지워진 삶. 운명에 따라 살아내는 것. 노예로 태어나서 노예로 사는 것. 경건하게 그 운명을 찬양하는 것이 시대정신이었다. 이 운명을 거역하는 혁명은 성공하지 않는다. 이게 고대적 시각이다. 그러니 일리아드가 놀라운 것이다.
그리스는 야만족에서 출발했다. 그 야만족들이 해협을 건너 트로이를 공격한 이야기가 일리아드의 1부다. 그게 3천년 전이다. 그런데 이 야만족 중의 하나가 신들이 집에 갈 수 없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가기를 시도한다. 그게 오디세우스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이 최초로 운명에 맞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관철한 최초의 이야기이다. 운명에 순응하고 복종하던 시대에 정면으로 맞선 최초의 사람이다. 현대에 기독교의 신 여호와에 반대하는 주인공을 만들었다고 하면 그걸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그런 용기를 낼 수 없을 것.
* 오찬호: 우리는 각자도생의 삶을 벗어날 수 있는가
좋은 사회란 대단한 결심이 없이 평범하게 살아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 각자도생에서 벗어나려는 대부분의 개인적 출구들은 세련된 각자도생에 불과하다. 연대와는 멀리 있는 것이다.
그런다고 사회가 변하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지 않은 사회다. 우리가 직면한 사회문제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우리들의 잘못된 의사결정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결정이 옳은 것인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잘못되었다면 당장 그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일단 안정된 후에 나중에 연대하면 되겠지, 이것은 일종의 프로파간다. 나의 불안과 불만에 대해 논리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시간 장소에 불문하고 해야 하는 것이다.
* 이어령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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