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줄이고자 하려고 마음먹었던 이유에 대해서 정리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지나서 결심만 남고 초기의 이유를 많이 까먹었다. 스스로 설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서 점심 시간을 틈타 항목만 있는 임시 게시물을 완성해 보았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물론! SNS를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개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소한 아래와 같이 SNS를 쓰는 분들과 나는 그다지 안 맞는 것 같음.
1. 나에게 말을 해라
– 이전에 나와 마무리짓지 못한 화제를 언급하면서 나에 대한 사적인 평가라고밖에 볼 수 없는 이야기를 애매모호하게 눙쳐서 SNS에 올린다. (덤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지지해줄 수 있는 게시물 공유까지.) 그러면 나는 이게 나에 대한 이야기라고 넘겨짚어서 대응을 해야 하나?
-> 절대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만에 하나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대응하는 것도 자의식 과잉처럼 느껴지고, 그렇다고 대응하지 않기에는 그 내용이 짜증난다. 그러니까 나는 웬만하면 SNS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해서 내가 그의 SNS를 보고 있을 거라는 만족감이라도 없애고 싶다. (비뚤어진 마음 맞음.)
2. 대화가 안 된다
– 만나서 우리의 의견을 나누는 자리인데 왜 네임드 누구에 대한 가십거리를 말하는가! 혹시 팔로우 리스트 관리가 자신의 정치성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스스로 생각을 한 게 아닌 말만 하니, 온갖 대단한 이름들만 가득하고 대화는 없다.
– 세계를 편집해 보는 거야 개인 취향이려니 하는데 그 편집된 세계가 전부라고 나에게 강요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런데 이런 종류는 매번 말해도 안 들어먹는다. SNS 안에서의 혼잣말과 자기가 좋아하는 말들에 찬동하는 자위행위만으로 정치한다고 주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 정치 행위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대화를 할 만한 자리에서조차 SNS에 얽매이는 게 싫기 때문이다!
3.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소립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시점에 읽은 책 두 권이 SNS를 줄여야겠다는 나의 생각을 강화시켜 주었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은 독서모임에서 추천해 줘서 읽은 책이고, <소립자>는 몇 년 만에 다시 읽은 책이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자신에 도달하기 위해 지식과 정보를 얻지 않으면 안 되고, 매일 최신의 정보로 갱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겁에 질린 강박관념에는 사실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자아를 지향하며 ‘모든 것’의 환상 아래 살포되어 있는 정보를 악착스럽게 긁어모으는 것. 그것이 뭐가 될 것인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p23)
평택으로 보낼 책 정리하다 읽게 된 <소립자>는 예능과 가십거리로 인생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을 접고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시 주었다. 검색해보니 책의 마지막 부분이자 신인류가 인류에게 바치는 헌사가 나온다. 솔직히 여기서 울컥했어…
역사는 존재한다. 역사는 사라지지 않으며 우리조차 역사의 지배를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역사가 아니다.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만들어 낸 그 불운하지만 용감한 종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원숭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 종은 고통 속에서 천하게 살았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고결한 꿈이 있었다. 그 종은 모순 덩어리였고 개인주의적이었으며 싸움을 좋아했고 이기심에 끝이 없었으며 때로는 가공할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선의와 사랑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세계 역사에서 처음으로 자기 초월의 가능성을 예상하였고, 수년 뒤에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그들의 마지막 대표자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지금, 우리가 인류에게 이 마지막 경의를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경의도 언젠가는 잊혀지고 시간의 모래 속으로 사라져 가겠지만, 적어도 한 번쯤은 이렇게 경의를 표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인류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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