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씨엠립 여행 3. 앙코르 톰

씨엠립을 잊어가는 것만 같아 빠르게 끝낼 수 있도록 하겠음.

아침을 맛있게 먹고 호텔 근처에 도열해 있는 눈에 보이는 툭툭 기사를 잡아 1일 투어 흥정에 나섰다. 1일 투어는 하루 종일 툭툭을 빌리는 것이다. 앙코르와트 유적지군이 워낙 넓어서 곳곳에 흩어진 유적지들을 건너 다니려면 이동 수단이 필요한데, 유적지군 내에서는 툭툭을 잡기 어려워서 보통 툭툭을 1일동안 빌려서 다니게 된다. 툭툭 기사가 유적지 입구에서 나를 내려주고 출구에서 기다리면, 나는 다시 그 툭툭을 타고 다음 유적지로 넘어가고, 그렇게 하루(보통 일몰까지)를 보내는 것이다.

나가자마자 처음 본 기사 사릿과 15불에 흥정을 마치고 출발. 그런데 그가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친구 쏨난에게 나를 넘겨주는 것이 아닌가. 오늘은 자기가 안 되니까 친구랑 함께 가고, 다음날 앙코르와트 일출부터 자신과 함께 하자는 것이다. 약간 미심쩍었지만 그냥 오케이했다. 알고 보니 사릿은 그날 바빴다고… (대체 왜 손님을 받은 거야!)

아무튼 드디어 유적지 관광 시작. 매표하는 곳으로 가서 앙코르와트 유적지군 전 지역 3일 패스를 끊었더니 40불이나 한다. 2일만 갈 거지만 1일권은 20불이고 2일권은 없기에 어쩔 수 없이 3일권 삼. 패스는 즉석에서 찍은 사진을 넣어 만들어 준다. 사진 웃기게 나왔는데…

툭툭을 타고 가며 찍은 사진. 난 이게 처음엔 씨엠립강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앙코르와트의 해자였다. 어마어마한 규모다.

이날 처음 목적한 곳은 바욘. 바욘은 크메르 제국의 자야바르만 7세가 건설한 ‘앙코르 톰’이라는 수도의 신전이다. 시기적으로 따지면 앙코르와트보다 몇 십년 후라고 한다. 이때까지도 ‘에이, 뭐 별 거 있겠어? 그냥 돌덩이겠지.’ 정도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유럽을 돌아다니면서도 다들 감동적이라는 건축물에 감명을 받은 적이 거의 없어서 심드렁한 마음으로 천천히 구경이나 하자는 마음이었다. 게다가 전날과 달리 찌는 듯한 더위였다. (최고 온도 34도!) 툭툭에서 내려 좀 걷기만 하면 땀이 송골송골 나는 날씨였다.

앙코르 톰 입구의 혼잡한모습

입구는 툭툭과 자동차와 사람들로 가득해 실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먼지를 뒤집어쓴 나는 거의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욘에 도착하자마자 먼지든 뭐든 생각할 겨를 없이 압도되었는데.

들어가기 전에 멀리서 본 바욘 사원.

이것이 인간이 돌로 만든 건축물이라니! 웅장한 돌산에 새겨진 수십개의 거대한 얼굴이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을 형상화했다는 사원. 저 거대한 4면상은 현재 36개밖에 안 남았다고 하지만 원래 54개나 있었다고 한다.

들어가기 전에 검표원이 검표를 한다. 어디서 왔냐며 “Japan? China?”하고 묻길래 “Korea!”라고 답했더니 의외라는 표정을… 사실 이 질문을 이곳저곳에서 많이 받았는데 아무도 처음에 내가 한국인이냐고 물어보질 않았다. 대체 왜? 한국인이 안 오는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많이 오는데? 나중엔 왜 내가 한국인 안 같냐고 물어봤지만 뚜렷한 답변을 못 얻었다. “Your skin color is different…”라고 대답해 준 어떤 캄보디아 사람이 있었는데 내 피부색이 왜 일본인??? 모르겠다. 아무튼 여자 혼자 다니니 검표원들과 경찰을 포함한 현지 남자들이 자꾸 들이댄다. 끈질긴 건 아니고, 대꾸 없이 쌩 지나가면 그냥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배웅해 준다.

바욘 안의 구조는 매우 복잡한데, 완벽한 대칭 형태로 이뤄져 있어 규칙만 파악하면 쉽게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맨 꼭대기에 올라가서 찍은 4면상 중 하나.

상상해 본다. 천 년 전, 이렇게 거대한 54*4=216개의 얼굴이 좀 더 완벽한 형태로, 까마득하게 위에서 미소짓고 있었다면 어땠을지. 천 년 후, 신에 대해 그 어떤 신비감도 없는 나조차 부서지고 손상된 이 얼굴들을 목도하고 감동 이전에 엄청난 경외를 느꼈다. 그러니 과거 좀 더 신화의 세계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은 단연코 압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짓누르는 고압적인 얼굴이 아니라, 참으로 상냥하고 위엄있는 미소. 정말 하염없이 우러러보게 된다. 툭툭 기사와 약속한 시간을 잊을 정도로 3층 꼭대기에서 신의 얼굴을 오랫동안 홀린 듯 쳐다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 회랑 부조를 관람하러 1층으로 내려갔다.

회랑의 부조는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생동감이 넘쳤다. 사진은 양감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 볼 때 느끼는 그 ‘튀어나올 듯한’ 감각을 주지 못한다. 아무리 사진을 잘 찍어도 직접 보는 것보다 그 존재감이 덜하다. 훌륭하게 조각된 부조는 제대로 찍히지도 않을 뿐더러 모든 유적지에 널리고 널려서, 그냥 아무도 안 찍었을 것같은 귀여운 부분만 찍어 왔다.

이 바욘을 지은 자야바르만 7세가 치룬 큰 전투를 형상한 부조라고.
귀여워서 1
귀여워서 2

원래 부조는 방향성이 있기 때문에 (군대 행진 등으로…) 옆 얼굴이 나오는 게 보통인데, 가끔 나를 쳐다보고 있는 조그마한 얼굴이 재미있어서 몇 개 찍었다. 알고 보니, 이렇게 정면을 보고 있는 얼굴은 석공들이 감독 몰래 장난을 쳐 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더 귀엽다.

다음날 앙코르와트의 부조도 보고 생각한 거지만, 이곳의 부조는 인간의 개성이 매우 살아 있다. 하나하나의 인물들이 마치 스토리를 갖고 있는 것처럼 조금씩은 생김새가 다 다르다. 막연하게 서양 중세의 종교화나 이집트 피라미드의 몰개성한 부조 등을 상상했는데 전혀 달랐다. 이곳 부조의 인물들은 기술적인 훌륭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디테일이 살아 있어, 마치 천 년 전의 사람들을 진짜로 마주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나를 응시하는 저 정면 얼굴들을 보면 ‘Hi’라고 인사해야 할 것 같을 정도로. 관대하게 웃고 있는 꼭대기층의 신과 아래층의 친근한 사람들. 천 년이 지나도 가늠할 수 있는 이 세계의 실루엣이 생생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다음 유적지 바푸온으로 향했다. 툭툭 기사 쏨난과 꽤 거리가 있는 북쪽 게이트에서 만나기로 해 놓은 터라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낮이 가까워 갈수록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가 점점 강도를 더해갔다. 바푸온도 역시 사원이라 메루산을 형상화했다. 다만 앙코르 톰을 지을 때 지은 것이 아니고 백 몇십년 전에 지어진 사원이라 건축 양식이 좀 다르다. 살짝 투박한 느낌이다.

참배로를 따라 바푸온으로 갈 수 있다.
무너진 사원의 돌들이 벤치 역할을 하고 있다.

너무 덥고 약속한 시간이 훌쩍 넘은 까닭에 허둥지둥 바푸온과 왕궁 터를 보고 북쪽 게이트로 향했다.

쏨난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는 수없이 많은 툭툭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도저히 쏨난의 툭툭을 찾을 수가 없어 당황한 나는 낯선 장소에서 길 잃은 마음이 되어 두리번거렸다. 순간 쏨난을 못 찾으면 오늘 일정은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서 툭툭을 잡으면 요금 바가지쓸 텐데, 아예 잡을 툭툭이 없어 집에 못 가면 어떡하지 등등의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 때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뭐라고 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가 나서 돌아봤더니 쏨난이 천진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 이 많은 관광객 사이에서 날 어떻게 발견해 준 건지. 그 때의 안심한 마음은 참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툭툭을 타고 달리니 더위가 바람에 씻겨 내려갔다.

툭툭을 타고 찍은 코끼리 테라스.
잠시 내려서 ‘승리의 문’ 촬영. 쏨난이 날 찍어준 사진도 있지만 패쓰…

점심은 쏨난이 추천한 곳으로 가서 때웠다. 관광객이 많은 식당이어서 그런지 맛은 그저 그랬다. 뭘 시켜야 할 지 몰라서 점원에게 그냥 맛있는 걸 추천해 달라고 했고, 모든 재료들을 튀기기만 한 음식을 받았다. (음식 값 6달러+물 1.5달러나 받았다…) 이 날의 경험을 통해 나는 관광객이 가는 음식점엔 다신 가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쏨난더러 같이 먹자고 했는데 사양하길래, 값이 비싸서 그런가?하고 내가 내겠다고 해도 극구 거절하더니 내가 시원한 음식점 안에서 밥을 먹는 동안 바깥에서 따로 챙겨온 도시락을 먹는다. 마음이 안 좋아서 후에 깐 망고를 사서 건넸는데도 받긴 받았지만 끝내 안 먹고 남겨두더라. 아마 툭툭 기사는 관광객에게 팁이나 음식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점심식사. 크게 맛있는 건 아니었다.

쓰다 보니 길어졌다. 따 쁘롬, 반떼이 끄데이, 쓰라 쓰랑, 그리고 밤 축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계속 이어 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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