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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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흔하게도, 인간 삶과 닮아서다. 정확히 말하자면 삶과 닮은 모양새를 갖고 있어서다.

야구는 내가 본 모든 스포츠 중 진행이 가장 느리다. 내가 비집고 들어갈 공백이 많다. 신체적 퍼포먼스를 쫓아가는 데 바쁜 다른 스포츠에 비해 관전이 가능하다. 룰도 세밀하고, 게임의 일정 부분은 통계적으로 공식화되어 진행되고, 약간 살아있는 말로 하는 체스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야구가 체스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말들이 각자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에 있다. 야구에서 가장 극적인 드라마는 투수와 타자의 맞대결에서 나온다. 마운드에서 고독하게 게임을 이끌어가는 투수, 어떻게든 진출해야만 하는 절박한 타자의 시선이 엇갈리는 모든 때, 그 곳에는 늘 드라마가 있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러니까, 그런 드라마들이 삶에 주는 착시 효과다. 삶과 유사한 형태로 운용되는 이 게임이 삶의 은유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내 삶에는 어떤 방향도 어떤 답도 없는데, 게임에는 명료한 방향과 진실이 있고, 기적과 대반전이 일어난다. 9회 만루 상황에서 3할대 타자를 마주한 마무리 투수가 각고의 분투 끝에 승리를 걸어잠궜을 때, 그리고 승리의 함성을 토해낼 때, 대부분의 창조된 휴먼 드라마에 시니컬하게 응수하던 나는 그 초 리얼 버라이어티에 무장해제되어 감동에 기꺼이 몸을 내맡기는 것이다.

실제로 삶은 야구처럼 일관되게 진행되지도 않고, 기적과 대반전은 없으며, 모든 이에게 공통된 룰이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방향 따윈 아무것도 없어서 그저 진창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한다는 그 아득함을 잠시 잊고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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