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독서모임에서 다시 <사람, 장소, 환대>를 읽고

요즘 여기에 쓸 만한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책을 읽고 여러 면에서 깊이 생각해 본 것은 정말이지 참 오랜만이라 우선 기록해본다.

인류학자 김현경이 쓴 <사람, 장소, 환대>는 초판이 2015년에 출간되었으니 나름 옛날 책이다. 나도 처음 읽은 건 아주 예전이었고, 어렴풋이 아주 유려하고 탄탄한 구조의 책으로 기억하고 있었다지만 솔직히 오랫동안 내 책장 구석에서 잊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부산 여행에 함께 갈 책을 고르면서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공간, 즉 도시와 마을, 그리고 그 안의 다양한 장소들이 어떻게 군인, 사형수, 여성 등을 배제해 왔는지를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누가, 어떤 조건에서 배제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전근대적 사회의 구조를 들여다본다. 그에 대비해 환대를 단순한 친절함이나 호의를 넘어서 현대 사회를 형성하게 하는 의례로 제시한다. “환대는 우리 사회의 근간”이라는 점, 즉 타인을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전근대 사회가 아닌 우리 현대 사회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논증한다. 아주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부산 여행에서 돌아올 무렵 일련의 딥페이크 성범죄가 드러났다. 분노가 치밀어 환대 개념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환대란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그 범죄자들도 환대해야 할지 용납이 안 되었다. (정확히는 없애버리고 싶었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한 환대는 개인 단위에서 일어나는 구체적 행위라기보단 어떤 사회계약의 원칙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환대의 개념을 그 젊은 남자들에게까지 적용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납득이 안 됐다.

과연 내가 그 성착취 범죄자들에게도 환대를 적용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환대하는 쪽이 주로 여성들이라는 측면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이런 고민을 혼자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참에 어쩌다 은평구 여성 독서모임에 멤버로 참여하게 됐다. 그리고 용기 있게 거기서 첫 번째 함께 읽을 책으로 <사람, 장소, 환대>를 추천해버렸다. (그리고 나중에 왜 이렇게 빡센 책을 골랐냐며 웃음 섞인 원성을 샀다. ^^)

모임에서 그런 성착취물 범죄에 대한 분노와 책에서 말하는 환대의 범위에 대한 혼란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다행히 다른 참여자들도 그 고민에 동참해 주었다. 범죄자들의 처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첨예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람이 왜 사람에게 그런 모욕을 행하는 것인지, 사람으로서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닌지, 과연 나는 사람으로 인정 받고 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로 확장되면서 자연스레 각자의 서사에 대해서도 한 자락씩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기쁘게도 나는 이 모임이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받아들여줄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커뮤니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인스타에 박제되었다

비록 환대의 주체와 그 범위에 대한 내 안의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사회 현상에 대한 이해만 심화되고 말았지만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모임을 만난 것, 그걸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던 것 같다. 다음 책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번엔 다른 사람이 책을 추천한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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