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가을 방학의 “취미는 사랑”이라는 노래를 즐겨 불렀지만 (폐허가 되었고) 취미가 사랑이면 정말 곤란하다. 그것들은 불멸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사랑이 아닌 취미도 불멸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개인의 노력을 통해 중단 시점을 어느 정도 협상 가능하다. 그런데 사람이든 고양이든 사랑에 취미를 두어버리면 나에게 연장의 시점을 결정할 권한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게다가 도파민 과다에 너무 익숙해져버린다. 게으르게 고양이를 껴안기만 해도 벅찬 기분이 가슴 깊은 곳에서 퍼져나와 시간이 너무 잘 간다. 그러다 가끔 낚시대로 놀아주기만 하면 내가 이 취미에 해야 할 일은 다하는 것이다. 그건 아무래도 사전적 의미로 따지건 상식적으로 따지건 취미생활이라고 볼 수 없지 않는가? 그런데 나에게 2022년까지 취미는 그게 전부였다.
나에게는 이제 사적인 사랑이 아닌 공적인 취미가 필요하다. 일이 아닌 적당히 좋아하는 다른 무엇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고, 그 취미를 탐닉한 결과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그런 의미의 취미는 정말 부지런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다. 노력한 끝에, 그것이 취미로 정착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모험을 감행해 가며 얻은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모험을 떠나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는 취미 후보들에는 1) 독서(이제 약간은 일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2) 차 마시기 3) 컴퓨터 게임 등이 있다. 모험을 떠나 봤지만 잠정 탈락한 취미 후보들로는 1) 바이올린 2) 보드게임 3) 수영 4) 넷플릭스 5) 클래식 감상 등이 있다. 사실 취미 후보 중에서 2)번 이후로는 너무나도 아슬아슬해서 후보라고 지칭하기도 쑥스러울 정도다.

다들 취미를 오래 지속하려면 함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충고해 주는데, 격하게 동의하지만, 문제는 나는 그런 목적으로 사람과 함께하는 걸 참 못한다. 어떤 관계든 예열이 필요하고 끓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데 예열 단계에서의 어색함을 도저히 못 참고 뛰쳐나오길 반복했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취미생활을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그 결과 남고 있는 것은 과거의 영광(여포가 있었던!)을 곱씹는 게으르고 무취미의 어떤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이 요새 들고 있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잘 취미생활하는지. 어쩜 그토록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자기(의 시간)를 쌓아가고 있는지. 부럽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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