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더위에 눈을 떴다. 바깥은 오후의 무더위를 경고하는 듯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나마 관대한 1월 방콕의 아침 태양은 정말이지, 연약한 동아시아 반도인에게는 정말 공격적이기 그지없다.


이날은 뒤늦게 방콕의 필수 여행 스팟인 왕궁과 왓 포 등 사원들을 둘러보기로 한 날이었다. (이러다간 못볼 수도 있다고, 전날까지 좀 생각했다;) 왕궁이 있는 동네로 가기 위해 걸어서 수상 버스에 탔다. 첫 번째 목적지는 원래 왓 포였지만 수상 버스의 경로에 따라 자연스레 왕궁이 되었다.



수상 버스에서 내려 왕궁 입구에 도착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정은이 입은 슬리브리스 옷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매표소에서 못생긴 반팔 티셔츠를 파는 걸 보면 장사 목적이 있지 않나 싶은 지나치게 엄격한 복장 규정이었다. 순순히 티셔츠를 사주기 싫었던 우리는 바로 나와서 주변의 옷가게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근처에는 옷가게가 없었고 그렇게 카오산로드까지 걸어가게 되는데 ㅋㅋㅋ
그러다가 현지인들로 붐비는 사원에도 들렀다. 메인인 방콕을 지을 때 모셨다는 기둥을 비롯해 부처님, 태국 고유 신 다 같이 모셔진 사원이었다. 여기서도 로또 당첨(나 정말 간절히 빌고 싶은 게 없다 ㅋㅋㅋ 다들 바라는 게 많아서 좋겠다(?))을 기원하며 적은 돈을 바쳤다.


그러고 나서 당연하게도 현지인들로 바글바글한 식당 용셍리로 향했다. 여기서 하이난식 당면볶음과 볶음밥을 맛보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두 번째 점심도 먹게 되었다는 걸 고려하면 배불리 먹지 않아 다행이었다.



두 번째 찾아간 중국 음식점에서의 점심식사는 역시 동행인의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던 돼지 뇌 국수. (나도 아무 거나 잘 먹어서 다행이다…) 뇌의 맛은 다소 느끼했다. 안 비린 생선 내장 같은 맛이었다. 딱히 비위가 상하진 않았지만 꽤 가격이 나가니 두 번은 먹지 않을 것 같긴 하다. 그리고 드디어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상상과 같은 맛이었지만 느끼하고 텁텁한 걸 먹고 먹으니 참 달콤했다.


점심 식사 후 티셔츠를 찾아 삼만리 하다가 결국 카오산로드로 향했다. 카오산로드는 저녁이 아닌 시간대라 그런지 다소 쓸쓸했다. 여느 관광지와 다를 바 없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폭풍 찾은 끝에 귀여운 티셔츠를 발견해 정은에게 입힐 겸 관광 기념품으로 하나 샀다. 이쯤 되면 뭘 살 때 흥정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어차피 관광지 상점이라 비쌌지만.



옷을 구매한 후 다시 첫 번째 목적지였던 왕궁으로 돌아갔다. 그쯤에는 왕궁 꼭 봐야 하나? 입장료까지 해서 참 비싼 몸이시기도 하지… 하는 비뚤어진 마음이 컸다.


하지만 들어가보니 비싼 몸이실 만했다. 나의 짧은 상상력을 초월하는 화려함이었다. 길거리를 헤맨 덕분에 덥고 지쳐 있었는데 금빛으로 장식된 탑들이 태양빛에 반짝이는 모습은 주저앉아 계속 보고 있고 싶을 정도로 폭발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모든 벽이 틈 없이 섬세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태국을 수호한다는 에메랄드 불상은 작지만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








그러고 나서 또 디저트를 먹었다. 다녀온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추천하는 망고찰밥이었다. 연유를 찰밥에 뿌려 먹는다는 아이디어가 재밌고 맛있었는데 꼭 두 개를 같이 먹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긴 계속 달기만 하면 물리니까? 근데 망고도 단데? 아무튼 먹고 걷고 먹고 걷고. 물론 먹은 게 너무 많은 탓에 결과적으로 살이 꽤 쪄온 거 같다.


그렇게 늦은 오후 왓 포에 도착했다. 역시 화려하긴 했지만, 왕궁과는 다른 컬러풀한 장식이 낭만적인 곳이었다. 늦은 시간이고 왕궁보다 인기가 덜해서 그런가, 왕궁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주황색 가사를 입은 스님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안에서 유명한 와불을 찾아 좀 헤맸는데 수다스러운 스님 귀인을 만나 가는 길을 안내 받았다. 사진도 찍고… 페이스북 친구 추가도 강요 받고…
그 유명한 거대한 와불은 정말 거대했다. 거대하다는 말 외에 덧붙일 말이 없다. 그 존재감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고 한 생각을 또 했다. 대체 어쩌다 이런 엄청난 걸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걸 실현시켰을까. 종교란 뭘까… (여행 다녀와서 불교의 문명사를 다룬 책들 읽고 있음;;;)


그러고 나서 왓 포의 문이 닫힐 때까지 그곳을 둘러볼 수 있었던 건 아유타야 마지막 사원에 이어 이 여행의 두 번째 큰 행운이었다. 거의 문 닫을 시간에 간 거라 평화롭게 펼쳐진 색색의 정원을 마치 내 것처럼 향유할 수 있었다. 왕궁이 좀 폭력적인 아름다움이라면 왓 포는 갖고 싶은 아름다움이랄까…




그러고 나서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용감한 정은은 전광판도 없어 언제 올지 모르는 방콕의 버스로 나를 안내해 또 재미난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방콕 버스에는 따로 요금 넣는 기계가 없고 마치 버스양처럼 직원 한 명이 직접 수금하러 다니고 내릴 정류장도 알려주는데 그분이 참으로 유쾌했다.




차이나타운에서 또 디저트로 부아로이를 먹고, 저녁 식사로는 샥스핀을 먹었다. 원래 가기로 했던 음식점은 문을 닫았나 뭔가의 이유로 가지 못하고 즉석에서 급하게 검색해서 간 음식점이었는데 기대 없이 갔음에도 만족스러웠다. 요리가 거대한 패밀리 사이즈가 아닌 1인분 사이즈로 나와서, 무엇보다도 샥스핀이라는 걸 첨 먹어봐서 좋았다.

그러고 나서 트랜스젠더 클럽에 놀러가기로 했다. 다만 하루 종일 방콕 시내를 탐험하며 땀 범벅이 된 우리는 클럽에 가기 전에 오일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마사지 후에는 샤워가 필수였기 때문에. 커플룸을 잡아주셔서 서로의 벗은 몸을 조금씩 보게 되었다. (소심하게 반항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전전날 받았던 타이 마사지에 비하면 부드러운 터치였지만, 조금 더 강렬했어도 좋을 법하게 아쉬웠다.
트랜스젠더 클럽은 월요일이라 그런지 짧은 공연으로 끝났다. 같이 춤추며 놀고 싶었는데 쑥스러워서 못했다. 언젠가는 나도 현지인들과 어울려 춤을 출 수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방콕 여행이 마무리되었다. 어떻게 요약하면 좋을까. 여행 내내 생각했지만, 나에게 정은과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나는 마치 게으른 물주처럼 GNL페이만 휘두르고, 정은이 모든 콘텐츠를 준비하고 안내해 주었다. 정은과 함께라면 모든 순간이 어드벤처가 되는 것 같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앞으로도 우리 인생에서 함께 여러 곳을 모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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