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은 평범하게 시작해 혼돈과 유혹으로 끝을 맺은 하루였다.

어영부영 나갈 준비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회계를 맡은 나에겐 다행히도 전날 실패했던 태국의 볼트 택시 앱으로 마법 같이 택시를 불러내고 지엘엔으로 결제하는 데 성공했다. (지엘엔은 정말 편리해서 여행 내내 의기양양하게 휘둘렀다!)
그렇게 느지막하게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그리고 태국의 믿을 수 없는 저렴한 물가에 본격적으로 놀라게 된 짜뚜짝 주말시장에 도착해서 일정을 시작했다. 여기서 만나다니 운명이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구매욕을 불태우게 하는 아이템들로 가득했다.




짜뚜짝 시장에서 인센스, 모자, 옷 등 이것저것 많이 샀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첨엔 흥정을 전제로 가격을 제시한다고 했지만 저렴한 가격에 놀라고 만족스러워 이땐 차마 흥정을 시도하지 못했다. 그래도 여기서 모자 200바트에 사서 여행 내내 엄청 잘 쓰고 다녔다. 엄청 마음에 드는 가디건도 300바트인가에 샀다. 그럼 됐지 뭐…
1시가 넘어가자 날이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배도 고파오기 시작했다. 여행지까지 와서 적당히 끼니를 때운다는 걸 용납할 수 없는 동행인 덕에 관광객 대상의 적당한 맛으로 판매하는 짜뚜짝 시장 음식을 모조리 지나쳤다. 시장을 나와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채식인들이 잘 이용한다는 채식 부페로 이동했다. 불과 250바트로 두 사람이 왕처럼 채식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감탄한 건 놀랍지 않게도 음식이었다. 태국 음식의 레이어는 어쩜 그토록 두터운지, 이젠 좀 비슷한 맛이 나올 것 같으면 ‘아니 이건 또 상상도 못한 맛이었는데?’ 하고 깜짝 놀라는 일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맛이 다종다양하니 1인분이 아주 적은 양으로만 나오는 것도 이해가 간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현지인들도 적은 양으로 이것저것 여러 가지 시켜 먹고 싶지 않을까… 현지인 대상 식료품 마켓이 채식 부페와 동시인 2시에 칼같이 닫아버리는 통에 더 돌아보고 싶었던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통곡하던 동행인과 다음 일정으로 발을 옮겼다.
다음 일정은 신선 식품 시장인 어떠꺼 시장. 채식 부페로부터 걸어갈 만한 위치에 있었다. 상당히 배불렀지만 여행 전부터 동남아 과일을 왕창 먹을 생각에 들떠 있었던 기억을 연료 삼아 힘을 내서 시장으로 향했다.





여기서 먹은 포멜론, 망고스틴, 그외 이름 모를 과일… 모두 좋았는데 레몬그라스 주스에서 갑자기 태국 음식과 거리감이 생겨버렸다. 경험은 값졌지만 한 번만으로 충분한 맛이었다…. 민트초코 음료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나치게 상쾌한 맛이었는데, 레몬그라스가 들어간 커리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더욱 배신감이 드는 맛이었다. 나는 이제 주스뿐 아니라 그 어떤 음식도 단일한 레몬그라스로 맛을 낸 음식을 먹지 않을 것이다. 부디 향신료로만 써달라. (다행히 동행인은 맘에 들어 했다.)
시간이 지체된 탓에 기존에 다음 일정으로 계획된 룸피니 공원을 제끼고 에라완 사원으로 발길을 향했다. 방콕의 수로를 따라 걸으며 주거지 풍경을 감상했다.



원래 여행지에서 현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워낙 방콕에서의 이동이 택시가 싸고 편해서 이용하지 않다가 이때 드디어 한참 지상과 떨어진 지상에서 달리는 지상철을 타볼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에라완 사원은 불교 인구가 90% 이상을 넘어가는 태국에서 독특하게 브라흐마를 모시는 힌두 사원으로, 영험하기가 그지없다고 한다. 불교 신자들도 즐겨 방문한다고.


정말이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따스하고 자그맣지만 고요하게 압도적인 분위기의 사원이었다. 간절하게 기원하는 얼굴들에는 그런 힘이 있다. 꽃뿐만 아니라 물이나 라면 등 자기가 가져온 식료품도 바치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 처음으로 타이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가는 길이 조금 어둠침침해서 긴장했지만, 나름대로 구글맵 리뷰 기준 평가가 좋은 곳이라고 해서 찾아가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고통이 다가오리라는 걸… 전신 마사지 60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길 수 있다는 걸… 왜소해 보이더라도 다시는 무에타이의 나라 타이 사람들의 악력을 얕보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되리라는 걸…


저녁은 또 조금 걸어서 미쉐린 3관왕으로 유명한 음식점에 갔다. 닭곰탕?과 닭고기와 함께 끓여 볶아낸 하이난 치킨라이스를 먹었는데 역시 미쉐린의 위명이 헛되지 않게 맛있었다. 닭의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고 진하고 깔끔한 맛이었고 밥은 말해 뭐해 넘 찰지고 고소해서 행복했다! 닭 선지도 의외로 나쁘지 않았고. 더 큰 수확은 계화차를 알게 된 것. 한국에 와서 바로 사서 끓여 먹었고 여행의 추억 때문이 아니라도 취향저격인 맛이라 오래오래 즐기게 될 거 같다.



다음 일정은 동행인의 위시리스트에 있었던 나나 엔터테인먼트 플라자였다. 다음의 블로그에서 잘 설명하고 있으니 어떤 곳인지 설명은 생략한다.


입구에서는 엄격한 검문을 통해 모든 짐을 내려놓고 들어가야 했다. 트랜스젠더 바에서 술을 주문했는데, 여자 손님 둘이서 다닌 덕인지 분위기는 예상 외로 위험하거나 음울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물론 곳곳에서 종업원을 거느리고 막 주무르는(…) 남성들의 모습을 보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겐 아름다운 트랜스젠더 분들이 성의 없이 봉춤을 추며 술을 사달라고 유혹하는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끝까지 손사래를 치며 공손하게 거절했지만 거절이 쉽지는 않았다. 거절에 슬퍼하는 척하는 모습도 유혹하는 모습도 참 귀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팽킹 업소 앞을 지날 때라서인지 가게 앞을 지나다가 한 번 가슴도 맞았다 왜 때려 ㅠㅠ)
그렇게 하루 동안 2만 3천보를 걸으며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머릿속은 약간 복잡해진 상태로. 수요와 공급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면 성을 팔아도 괜찮은 걸까? 여행이란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것만큼이나 평소엔 그냥 지나쳤던 생각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라는 것을 곱씹으며 죽은 듯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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