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정은과 함께한 방콕 여행기 (1일차)

얼마 전 태국 방콕에 다녀왔다. 날씨와 사람 모두 따뜻해서 안온한 여행이었다. 잊기 전에 간략하게 기록해본다.

비행기에서의 경험은 별로 좋지 않았다. 밥을 안 주는 에어아시아 티켓을 샀더니, 비행 내내 주린 배를 부여잡고 졸면서 6시간여를 보내야 했다. 옆자리 아주머니는 자꾸 팔로 나를 쳐서 숙면을 취하지도 못했다. 그러고 있다가 착륙한다는 방송에 문득 눈을 뜨니 아래와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방콕의 첫 인상은 보기만 해도 배부를 정도의 광활한 논밭이었다.

픽업을 예약해놓았기에 비교적 수월하게 에어비엔비 숙소에 도착했다. 이 숙소를 결정할 때 가장 기대하게 했던 10마리의 순둥이 고양이들이 무덤덤하게 날 반겨주었다. 고양이들은 한밤중에 방문을 열어놨더니 느닷없이 방문해서 침대에 올라와주는 등 머무는 내내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나를 기쁘게 했다. 특히 밥 먹을 때 옆에 와서 꼬리를 살랑이는 모습은 그 어떤 호화 시설보다도 이 숙소의 가치를 높게 만들었다. 내가 물리 고양이와 사는 것을 얼마나 행복하게 느꼈는지를 계속 상기하게 해 주었다. (나만 고양이 없어 ㅠㅠ)

숙소에서 합류한 정은과 방콕에서 가장 큰 쇼핑몰인 아이콘 시암에 가서 미리 예약해둔 크루즈를 탑승하기 전까지 설렁설렁 놀았다.

크루즈는 나름대로 로망이었다. 이전까지 한 번도 타보지 못했었는데, 어렸을 적 읽은 할리퀸 로맨스 소설에서 온 것 같은 럭셔리하고 낭만적인 이미지로 상상하고 있었다. (소설이나 빨강머리 앤 같은 만화를 통해 환상을 갖게 된 라즈베리 파이, 럼에 졸인 잼, 흰 빵 등처럼?)

그러나 내가 가진 크루즈의 이미지는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는 혼돈 속에서 깨져버렸다. 방콕의 야경을 배경으로 우아하게 와인잔을 기울이며 식사를 하고 방콕에 대해 설명해주는 안내 방송을 듣는 게 주요 액티비티일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막무가내 춤판이 주요 액티비티였다… 크루즈도 크루즈 나름일 테지만 사실상 건전한 묻지마 관광버스와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태국 가수가 부르는 다양한 국적의 노래 속 ‘어머나’ ‘아모르파티’ ‘마카레나’ 등이 울려퍼지는… (다른 크루즈도 다 이런 건 아니겠지)

좌중을 압도한 춤꾼…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그 자체로 충분히 웃기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후 카오산로드에 들러볼까 하는 시도는 택시가 잡히지 않아 좌절되었고 아쉬운 마음에 숙소로 돌아오면서 편의점에 들러 태국 새우깡과 제비집 음료(강장이 되었을진 모르나 맛은 없었다) 등의 주전부리를 사서 정은과 내 방 침대에 앉아 하루를 마무리하는 수다를 떨었다. 이때 목을 너무 많이 썼는지 다음날 목이 꽤 아팠다. 이후에는 말을 너무 많이, 크게 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조절했을 정도였다….

그치만 좀 무리하는 순간들이야말로 여행의 참 묘미가 아닐까.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깔깔대며 수다 떨던 그 시간이 그날 여정의 가장 큰 즐거움으로 남았다. 덕분에 많이 웃고 많이 떠든 여행 첫 날이 되었다.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겠지? 2~4일차에는 평화롭고 설렁설렁했던 첫 날에 비해 다소 자극적(…)인 여정이 이어질 것이다. 커밍 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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