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무드를 콘텐츠로 만들지 말아야

어느 순간부터 행복과 즐거움을 콘텐츠로 전시하는 데 약간 질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 트위터가 X가 되고 주로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세상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 이해하는 창구로 사용하게 되면서 그런 심술이 생기게 된 모양이다. 나도 마찬가지면서!

행복과 즐거움을 전시하는 말들은 단순히 귀여운 자랑일 때도 있고 남들보다 혹은 남들만큼 잘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메시지일 때도 있고, 가끔은 그놈의 셀프 브랜딩을 위한 빌드업일 때도 있다. 이를 함께하는 것도 물론 서로의 자존감을 위해 필요한 일이고 사회가 하는 일이지만 마치 가끔은 결혼식 축의금 상호 적립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좀 질리기도 한다. 콘텐츠적으론 대부분이 내가 소비를 엄청나 했다는 재력 과시하기와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하고.

반면 우울과 고통을 전시하는 말들에는 덜 경계하게 된다. 일단 절박성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우울과 고통을 토로하는 말들은 안으로 삭히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내가 그러든 남이 그러든 누군가 자의로 함께할 수 있다면 함께하는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행복과 즐거움을 함께하는 것처럼 그게 사회가 하는 일이니까. 물론 늘 그렇듯 옵션이다.

하지만 나의 삶으로 한정하자면 행복과 즐거움만큼 우울과 고통을 전시하는 데에도 절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넘 좋았다, (내가) 넘 고통스러웠다 이 내용밖에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타인이 나를 왜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아니지만(사회라니까!) 다소 사고가 쇼츠화되고 있다고 해야 하나. 내가 ‘왜’ 좋은지, ‘어떻게’ 고통스러운지, 좋고 고통스러운 것의 정체가 보편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까지 전혀 나아가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라는 게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포스트는 그동안 열심히 본 유튜브 채널 몇 개에 대해 리뷰를 써볼까 한다. 방콕 여행 준비도 해야 하는데. 그럼 그건 그다음 포스트로.

오늘은 아침엔 홍차 오후엔 보이차를 먹었고 지난 집에서 버리지 못하고 가져온 오래된 양념통과 향신료들을 다 청소했다. 가만히 누워 좋은 스피커로 크게 피아노 음악을 들었다. 압도적으로 평온한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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