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기 전 다짐했던 건 이번에야말로! 하루하루 성실한 여행 일기를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3일차까지 쓰고 결국 FAIL… 왜 실패했을까 생각해봤는데 뭐, 늘 그렇듯 미룰 이유는 많고(체력 부족, 기억력 부족, 배터리 부족…) 쓸 이유는 별로 없어서 아닐까 싶다. 간략한 소회를 적어 마무리하기로 했다.
여행은 거의 즐거웠다. 보스턴과 뉴욕은 다른 매력을 지닌 동네였고 그래서 다른 방식의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보스턴에선 일반 미국인들의 삶을 건너건너 훔쳐볼 수 있었다. (물론 보스턴도 미국 내에선 손꼽히는 부유한 동네라지만 뉴욕보단 일반에 가까울 거 같다…) 보스턴 주민의 도움을 받아 미국 사람들이 잘 먹는 음식 먹어보고, 미국 사람들이 많이 쇼핑하는 곳 가서 쇼핑해보고, 미국 사람들처럼 동네 공원과 동물원을 산책해볼 수 있었다. 관광을 위한 관광지는 그저 그랬지만 그조차도 돌이켜보니 추억이다. 벼르던 작은 유흥(!)도 시도해보고… 쿵짝이 잘 맞는 친구와 즐겁게, 진득하게 놀아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중간에 조금 어색해지는 일도 있었지만… ㅜㅜ
아래는 대중없이 고른 보스턴 사진.














뉴욕에선 세계 수도(ㅋㅋㅋ)다운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었다. 굉장히 레이어가 여러 겹이고 또 깊은 도시였다. 카네기홀에서 재즈 공연을, 링컨 센터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봤다. 미술관과 박물관은 거의 하루 걸러 하루 갔다. 여러 종류의 뉴요커도 봤다. 뉴요커 하면 떠올리는, 초 단위로 시간을 빡세게 관리할 것 같은 수트를 쫙 빼입은 회사원들(퇴근길에 신발만 갈아신고 센트럴 파크에서 달리기를 한다;)도 있었지만, 낮 시간 백인 아이의 유모차를 끄는 비백인 여성들, 살인적인 물가에 식당에 가지 못하고 주저앉아 점심을 먹는 인부들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맨해튼 고층빌딩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은 도시 문명의 절정으로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맨해튼 바깥은 무대 뒷편처럼 극단적으로 낙후돼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성공(향상?)을 향한 엄청난 동기부여를 받을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동네였다. 그 모든 분위기를 관람하는 와중에도 내 마음 한 켠에선 이제 그만 집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치밀었다. 그도 그럴 게, 10년(정확히는 9년 11개월) 근속의 끝을 장식하는 일정이었다.
역시 대중없이 고른 뉴욕 사진.

















처음부터, 그러니까 비행기표를 끊을 때부터 이 여행은 순수한 여행이지 못했다. 퇴사의 물리적인 마지노선을 설정한 결단에 가까웠다. 여행 전까지 이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을까?에 답을 낼 수 있으면 계속 다니고 못 내면 그만두자고, 결심은 그렇게 했어도 끝의 끝까지 망설였고 결국 비행기 타기 5일 전에 사직서를 냈다. 생각보다 슬프지도 후련하지도 않았지만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했다. 당연하다. 나에게는 근 10년간의 생활 공동체였다… 아주 정성을 다했던. ㅎㅎ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10년의 피로까지는 아니지만 그 긴 긴 세월 동안 그 회사에서 내가 잘했던 거, 잘못했던 거, 더 좋아할 수 있었던 사람들, 싫어해도 됐던 사람들, 그런 나를 좋아하고 싫어했던 사람들까지 떠오르며 피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는 미래로 이어질 수 없는 감정이라는 데 그 피곤함의 원인이 있었고. (물론 계속 이고 가야 할 숙제가 ㅜㅜ.)
그런 의미에서 미국 여행이 좋은 단절이 돼 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퇴사하고 홀로 늘어져 있었으면 후유증이 들쩍지근하게 늘어붙었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경하기 그지없는 보스턴과 뉴욕 세상을 정신 없이 쏘다니며 들어붙어 있었던 헛헛함이 증발해버린 느낌이다. 다들 이별하고 왜 여행 가나 했더니… 고전에는 늘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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