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기억을 왜 왜곡하는가

솔직하게 살되 기억은 왜곡해서 정리할 거라는 삶의 태도가 좀 모순 같은데 다 이유가 있다. 왜곡은 대부분 소극적인 형태, 그러니까 일부러 잊는 식으로 일어나지만 가끔은 자의적인 이름 붙이기를 통해 적극적으로 일어날 때도 있다. 왜 그런 짓을 하는 걸까 짧게 돌이켜봤는데

  1. 기질적으로 정리하기를 좋아한다. 당장은 그 의미가 드러날 수 없는 수많은 삶의 파편들에 대해서 그냥 놔두지 못하고 얼른 구획을 지어 이름을 붙인 후 보관하거나 혹은 버리거나 하고 싶어 한다. 효율성을 좋아하는 성질에서 비롯된 부분도 있지만 그보다는 결벽증이 큰 듯;하다
  2. 상처 받기 싫은 마음이 작용할 때도 있다.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것이 영원히 내 인생에 간섭할 거라는 사실이 무서워서 그것의 영향력을 한정 짓고 싶어하는 나약한 마음. (정리 안 한 채로 오래 두면 십중팔구 그렇게 되기 마련이다….)
  3. 족쇄를 더 늘리고 싶지 않다. 이건 2와 비슷한 맥락인데 그러잖아도 내가 한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기에 가끔씩은 기억을 과거화하지 않으면 삶이 너무 무겁고 우울해질 가능성이 큰 듯하다….

굳이 인생의 의미를 안 찾게 된 지는 오래 됐다.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안 든다. 나는 동물이고 다양한 집단의 일원일 뿐이다. 여전히 신도 운명도 하다못해 자연법칙조차 믿지 못한다. 그래도 가끔씩은 머릿속에서 시즌을 정리한다. 다음 시즌은 더 만족스러운 시즌을 만드려고 노력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즉물적인 인생을 끌고 갈 도리가 없다.

Category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