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아무래도 행복은 별로

어차피 가지지 못할 걸 알아서인지 언젠가부터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사실 안 바란다고 하기에는 그게 뭔지 잘 모른다. 입버릇처럼 행복해! 라 하지만 그건 좋아! 즐거워! 사랑해! 기뻐! 이런 말들과 별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살아난 꿀떡이 소식을 들었을 때라든가… ㅠㅠ

만약 행복을 무드 그러니까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기분 상태라 한다면 최근에 나는 은은하게 행복한 편이다. 잠도 늘었고 나름 안정적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 행복을 활력이라 한다면 그것도 나아지는 중이다. 한동안 상당히 무기력했지만 봄을 계기로 회복 중이다. 또 뭐가 있을까. 연결감이라 한다면 극단적으로 외로운 상태였다가 최근 풀뿌리 민주주의^^ 은평구로 이사도 하고 코로나 때문에 안 만나던 지인들도 만나고 엄청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도 자주 연락하고 있어서 좀 충족된 상태 같다. 하지만 사람들이 행복이라 부르는 건 이 정도 소소한 감정이 아닌 듯하다. 뭔가 더 심장이 터질 듯한 감격 비슷한 상태? 아무튼 그게 행복이라면 가끔 선물처럼 찾아오는 게 좋지 않나, 오히려 자주 찾아오면 감동이 줄어들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할 때 잘 이해를 못한다. 각자에게 행복이 얼마나 절박한지 다 다르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사실 노력한다고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인가 싶다. 통제욕이 좀 높아서인지 자주 절감한다. 통제가 되는 일이 잘 없다!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확률을 높이려 노력할 수야 있겠지만 그뿐이다! 게다가 과연 노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갈 확률을 높이는지 잘 모르겠을 때도 많다. 그런데도 왜! 어째서 더 나은 스스로가 되고자 하는 노력을, 더 좋은 인생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포기할 수 없는가? 그래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면 대체 뭘 바라서? (아예 다른 사람을 위해 살면 안 되나? <- 이건 원한감정 가득한 인간 되기 쉬워서 안 됨) 생각해봤는데 그거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인 거 같다. 그냥 내일 멸망 사과나무 심는다 그런 식의…

인생에 남을 금과옥조를 많이 주신 오인영 선생님이 예전에 알려주신 중용의 한 대목을 종종 떠올린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그것을 알며 어떤 사람은 배워서 그것을 알며 어떤 사람은 고생해서 그것을 알지만, 그것을 앎에 있어서는 한가지이다.

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及其知 一也 或安而行之 或利而行之 或勉强而行之 及其成功 一也

(중용 20장)

나중에 뒤이은 구절을 찾아봤다. 좀 더 격려처럼 느껴졌다. 배우려고 노력하면 지혜를 갖춘 사람과 같고, 억지로라도 행동하면 어진 사람과 같고, 부끄러움을 알면 용기를 가진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은 그렇단 것이다! (와)

배우기를 좋아하는 건 지智에 가깝고, 힘써 행하는 건 인仁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아는 건 용勇에 가깝다.

好學 近乎知(智) 力行 近乎仁 知恥 近乎勇

(중용 20장)

흑흑 오랜만에 보니 좋네. 살다 보니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한 게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과정이 곧 결과라고 생각하게 됐는데요…. 선생님들 과정이 중요한 거 맞죠.

아무튼 행복은 무슨 고정된 트로피가 아니라, 행복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해야 깊이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지 스스로 모색하는 그 과정을 몽땅 뭉뚱그려서 행복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지 않으면 닿을 수 없을 거 같기도 하고 ㅠㅠ) 쓰고 보니 또 탈무드 같은 데에서 나올 법한 뻔한 말이긴 한데 그냥 그럴 거 같다는 생각이 요새 좀 들어. 오 아직 11시 55분인데 벌써 졸리다. 자야겠다. (마무리 맨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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