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2020년 결산

어영부영 2020년이 지나갔다. 올해는 일출을 보러 가지 않아서인지 한 해가 갔다는 게 실감이 잘 안 난다. 그래도 랜선 해돋이는 챙겨 봤다.

JTBC 아침& 앵커님 오래오래 해주세요

유독 외로웠던 한 해였다. 다들 점점 바빠지고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친목 만남이 체감상 절반 이하로 줄어 버렸다. 술자리의 왁자함과 대가 없이 건네는 상냥한 제스처들을 통해 달래보곤 했던 외로움에 대면해야 하는 순간이 이전보다 잦았다. 특히 여름에 받은 고발 사건이 아주 사무쳤다. 봉합하는 과정에서 또 많은 사람에게 도움과 위로를 받았고 너무나 고마웠지만, 과거에 쌓아왔다고 여겼던 어떤 유대가 속수무책으로 부서지고 그로 인해 소급해 짓쳐드는 외로움은 정말 어디에도 호소할 데가 없더라. 스스로를 탓할 도리밖에 없다…

사실 2020년은 무엇보다 회사 일로 몸과 마음이 분주한 한 해였다. 4권의 책을 마감하고 2개의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부서 1개가 새로 만들어지는 데 나름의 역할을 했다. 2019년에는 혼자 일했는데 순식간에 총 6-2(+2)명의 팀원이 생겨났고 여러 일을 겪었다. 이 간단해 보이는 숫자들 각각에 담긴 사연이 얼마나 구구하며 감정은 또 얼마나 절절한지… 이게 뭐라고, 그저 헛웃음만 날 뿐이다.

어쩌면 그에서 도피하려는 몸부림이었을지도? 구체적인 수치는 없지만 바쁜 와중에도 텍스트를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읽어치운 한 해기도 했다. 점점 더 글 읽기가 수월해진다. 독해력이 상승했다기보다는(최고점은 수능 때 찍었겠지…) 텍스트가 안 부담스럽다 해야 하나. 의무적으로 혹은 필요에 의해 수단으로 읽는 게 아니라 정말 읽기 그 자체를 좋아하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결국, 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오늘은 묵혀뒀던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을 읽었다. (원제는 Wanderlust: A history of Walking 인데 좀 이도저도 아니게 번안됐다.) 그럴 줄 알았지만 정말 강력한 책이었다. 따뜻한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읽다 중간쯤에 덮고 이 추운 날 훌쩍 이대 캠퍼스와 그 뒷산에 산책을 다녀왔을 정도로. 블로그에 간략히 2020년을 보낸 소감을 써볼까 하는 생각도 그 산책에서 했다.

이것도 위와 비슷한 맥락에서, 올 한 해를 겪으며 정말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듣고 있으니 ㅠㅠ) 미술의 경우 지적 즐거움을 주긴 했지만 끝끝내 좋아하지 못했던 거 같은데 클래식은 뼛속 깊이 좋아하게 되고 말았다. 베를린 필 앱을 결제했다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1년 내내 열심히 클래식을 들었는데 결론적으로 작곡가로 따지자면 최애는 분하게도 지금까진 베토벤이다. 모차르트는 좋지만 너무 매끈하다. 바흐도 아직은 다소 무뚝뚝하게 느껴지고, 최근 접한 쇼팽 역시 소나타와 연습곡까지는 괜찮은데 대부분의 곡이 지나치게 섬세하고 내밀해서 종종 듣다가 민망해서 끄게 된다. (협주곡은 진짜 오케스트라 부분이 너무 별로다. 1번 2악장의 죽어라 요망한 부분만 빼면…) 왠지 나중에 등장할 러시아 음악가들 중 하나가 베토벤을 밀어내고 최애 자리를 차지할 거 같은 예감이 드는데, 얼른 나 없이 씀풍씀풍 잘 나왔으면 좋겠다.

로맨스는 내내 어줍잖은 책임감과 동정심, 윤리 의식 사이에서 어쩌지 못하고 ‘아 모르겠다 나중에 해결하자…’ 상태로 손 놓고 방관하고 있다. 이렇게 언제나 급히 처리해야 할 일들 사이에서 후순위로 밀리곤 하는데, 로맨스가 지금 인생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떨어져서기도 할 테고 너무 겁이 나서기도 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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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결산이라고 썼지만 늘 그렇듯 결론이 없어 떠오르는 생각을 어영부영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게 되었다. 아무튼 이제 서른다섯 살이다. 신기하다. 아득하고. 여포는 열다섯이 되었다. 함께 늙어줘서 고마울 뿐이다.

이 시각의 여포… 오늘도 어김없이 여포 사랑해로 끝나는구나

“2020년 결산” 글의 댓글 2개

  1. 챨리

    히옌.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늘 행복이 따르고, 알차게 채워지는 2021년이 되기를 기원할게요~~ ^^
    그리고 레베카 솔닛 책,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덕분에 얻어가는 것도 있어서 고마운 마음이에요~~
    나도 클래식 무척 좋아해서 깨어있는 시간엔 거의 항상 클래식FM을 틀어놓곤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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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챨리 축복 고마워 대체 언제가 돼야 홀가분하게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날이 올까! 참으로 그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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