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작정하고 기록

오랜만에 들어왔다. 그동안 여러 일이 있었다. 최소 5번까지 쓸 거리가 들어차 있지만 아마 다 못 쓸 것 같다. 뭐 중요한 건 1번에 쓸 테니.

1.

벌써 세 달 전의 일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때문에 우울하고 그 와중에 책 두 권을 동시에 마감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5월 말, 함께 일하던 팀원 한 명이 팀장인 나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노동청 진정을 넣었다. 이후 회사는 인사위원회를 꾸려서, 노동청은 담당 주무관을 통해 진상 조사에 나섰다. 그 팀원의 진정서와 진술, 그에 대한 나의 소명, 내 소명에 대한 그 팀원의 반박, 진정서에 등장한 참고인들 진술까지, 두어 달 동안 지난한 조사 과정이 이어졌다.

여기서 그 팀원의 진정과 내 소명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건 의미도 없고 좀 구차하게 느껴지니 생략한다. 어쨌든 내 기준 나의 가장 큰 잘못이라고 하면 바쁘다는 핑계로 그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기를 계속 유예한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싫어하는 특정 성향을 그 팀원에게서 발견하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사실상 외면했었다. 그 성향이 야기한 업무상의 문제만 떼어 쓸데없이 까칠하게 지적하고, 그 팀원 자체를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해선 깊게 생각하지 않고 회피했다. 아마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그랬던 것 같다. 마침 마감으로 바빴기에 핑계도 있었고. 사실 아예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노력은 결국 그 팀원이 노동청에 진정을 넣는 파국을 불러왔다…. 아무튼 이건 내가 진단한 내 문제고, 그 팀원의 진정이 유효한가와는 완전히 다른 사안이다. 그 진정 내용은 오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사실관계를 완전히 왜곡한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모함이었다. 제3자들을 통해 너무나도 쉽게 사실이 아님을 밝힐 수 있었던, 그래서 내가 얼마나 미웠기에 이렇게까지 했을까 아연해졌던.

아무튼 나로서는 당연하게도, 7월 초에 그 팀원이 나를 상대로 제기한 네 가지 직장 내 괴롭힘 혐의 모두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났다. 이후 판결을 납득하지 못한 그 팀원은 회사 단체 채팅방을 비롯한 여러 채널을 통해 공개사과를 요구하거나 근거 없는 비방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 비방이 회사 외부에서 나에게까지 전해질 정도로 번지자 고소를 고민해야 했다. 몇 가지 루트로 변호사를 소개 받았는데 모두 명예훼손과 무고가 성립한다고 판단했지만 고소를 진행할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어떤 변호사는 고소해서 혼쭐을 내기를 추천했고 어떤 변호사는 그 과정에서 나도 고통 받을 수 있으니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고소는 결과적으로 하지 않았다. 겁이 나서는 아니었다. (…반대 입장에서긴 했지만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내가 아는 한 공개적인 비방은 시간이 지나자 잠잠해지긴 했던 것이다. 물론 그 팀원이 나의 커리어에 미친 응분의 대가를 치루길 원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혹은 뭐든 피해보상을 받길 원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고소를 분명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 사라지고 없었다. 처음에는 그 팀원에 대한 안타까움과 복수심 같은 상반된 감정들이 폭풍처럼 왔다갔다 했는데 조사 과정에서 모두 질려서 없어졌다. 혹 남아 있었더라도 얼른 다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커져서 전혀 중요치 않았다.

사건 자체는 이렇게 공식적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여기서 입은 상흔이 여전히 수습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특히 이런 깨달음이 아직 좀 아프다. 첫째, 내 딴에 팀을 위해서 한답시고 해왔던 노력 전체가 누군가에게는 권위적인 공격으로만 여겨질 수 있었다는 사실. 둘째, 당연하지만 지금 우리 팀원들은 그 팀원의 모함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와 회사(+노동청)에 신뢰가 없다는 사실. 셋째, 어쩌면 그 이상으로, 진실을 굳이 알고 싶을 만큼 이 사건이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 (그러네 회사니까!)

결국 모든 허망함을 견디면서 이 일을 열심히 할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잠정적인 답이나마 내어 닻으로 삼지 않으면 순식간에 삶을 잠식하는 이 모든 희비극에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며 종국에는 원한 투성이로 늙어버릴 것이다. (안돼)

2.

1을 쓰며 너무 심력을 소모해서 2는 두루뭉술하게 대충 쓴다. (일도 아니고!)

제법 오랫동안, 안 지르면 아무 진전도 없이 꺼질 작은 감정의 불씨를 품고 있기만 했다. 뭐라고 하면서 내놓아야 할지 몰라서 자신 있게 지르지 못했다. 별 것 아닌 모호한 내 감정만으로 소모하기에는 꽤 소중한 관계라서. 다들 호르몬 작용은 2년에 불과하다고 해서 고백을 참았는데! 점점 참기 힘들다. 참 불가해하고 괴이쩍은 충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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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기록” 글의 댓글 2개

  1. 챨리

    히옌느.. 내 사랑.. 기운내요 토닥토닥…

    1. ㅠㅠ 고마어 찰리 바닥을 치고 조금 나아졌다 흐흑 보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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