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서점의 도서관화 왜 문제인가

요즘 큰 서점에 가보면 웬만한 도서관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잘 돼 있다. 곳곳에 푹신한 쇼파가 놓여 있고 널찍한 책상에는 스탠드까지 구비되어 있다. 어디선가 잔잔한 클래식이 들려오고 아무튼 편안히 앉아 책을 즐기기에 아주 좋은 공간이다. 이용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조금씩 이렇게 서점이 도서관처럼 변해 가는 현상을 문제라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사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서점을 도서관처럼 운영하는 건 문제가 없어 보인다. 책은 상품이고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상품을 어떤 방식으로 판매하는지는 기본적으로 판매자의 영역일 테니 말이다. 문제는커녕 기업의 사회 공헌에 가까운 느낌마저 있다. 그렇잖아도 요새 사람들이 책 잘 안 읽는다고 하는데 서점이 도서관 역할을 해주면 좋은 게 아닌가? 하지만 그 거대한 사설 도서관을 즐기는 게 어떤 대가를 감수하는 일인 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 도서 유통 구조는 서점, 정확히 말하면 소수의 유통사가 독과점하는 형태이다. 그리고 그러한 집중은 몇 가지 요인으로 인해 심화되고 있다. 일단 신문과 같은 기성 매체의 영향력이 약화되어 책을 소개하는 역할이 거의 서점과 개인으로 옮겨갔다. 그런데다 과거에 비해 독자들이 어떤 책이 필요할지 참을성 있게 탐구할 여유가 없다. 시간이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이제 유튜브나 팟캐스트처럼 ‘나에게 딱 맞는 책을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을 대체할 만한 엔터테인먼트가 많다. 따라서 책이 절대적인 매체가 아니고 없더라도 크게 아쉽지 않다. 굳이 불편한 방식을 택하기보다는 기존의 편리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책을 찾게 될 수밖에 없다.

기성 대형 출판사들의 현실 안주도 몇몇 유통사의 독과점을 부추기고 있다. 그들 입장에선 현 시장에서 유리한 출발선에 서 있기 때문에 굳이 시장의 판도를 바꿀 필요가 없다. 웬만한 대형 출판사의 경우 한참 전에 정가 대비 몇 퍼센트로 신간을 공급할 건지 계약을 마쳐 놓은 상태에 있다. 공급률이 성인 도서 기준 약 60~70퍼센트 대에 형성되어 있고 이건 유통사의 파워가 지금보다 훨씬 덜했던 때의 조건이다. 지금 신생 출판사의 경우 50~60퍼센트다. 이 조건이 싫으면 유통 못하는 건데 그러면 사실상 출판사로서는 먹고살 길이 아예 막혀버리는 거다. 애초에 신생 출판사 책은 안 가져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유통사가 제시하는 공급률을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다. 반면 기성 대형 출판사는 이미 쌓여 있는 책 종수도 많고 유명 저자들도 여럿 데리고 있기 때문에 유통사에서 공급률을 내리고자 했을 때 그나마 방어가 가능하다. 즉 같은 사양의 책을 내도 대형 출판사가 신생 출판사보다 더 저렴하게 내거나 마케팅에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게 되는 거다. 대형 출판사 입장에서는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현재의 독과점 질서가 유지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서점이 도서관화되는 데에는 이 유통사와 출판사의 갑을관계가 작동한다. 왜냐하면 신기하게도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책은 서점의 것이 아니다. 서점은 일단 책을 어음으로 가져가고 몇 개월 뒤 팔린 만큼만 지불하게 된다. 그리고 가져갔다가 책이 훼손되면 다시 출판사로 반품한다. 당연히 출판사마다 폐기 도서가 엄청 발생한다. 서점 내의 매대들 대부분이 출판사들이 돈을 주고 사는 유료 매대기 때문에 (그것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경쟁이 치열하다.) 결론적으로 출판사가 거의 그 공간을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대부분의 산업에서 비슷한 독과점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책 시장에서 독과점이 일어나서 가장 큰 문제는 그로 인해 사람들이 읽을 만한 책이 점점 줄어든다는 거다.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도 내용으로 승부하기보다는 이전에 잘 팔렸던 책 같은 상품성이 검증된 책을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대형 서점에서 책의 노출을 결정하는 엠디는 그 직무 자체가 판매량을 달성해야 하는 직원이며 웬만한 주관을 개입하지 않으면 잘 팔릴 만한 책을 노출하는 게 디폴트다. 그래서 특히 신생 출판사 입장에서는 책을 팔아서 먹고살기 위해서 엠디의 눈에 들만한 책을 만들어야 하고, 그래서 하나 유행하면 비슷비슷한 책이 무더기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 게 사실 고민하지 않고 책임도 회피하고 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무야 미안해.

아무튼 이렇게 시장논리에 극단적으로 휘둘리는 상황은 결국 책이라는 매체의 입지를 협소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비슷비슷한 내용에 물려서든, 포장이 가장 중요한 관상용 아이템으로 국한되어서든, 어쨌든 책은 예전보다 다양하고 진지한 아이디어를 유통하는 매체로서 받아들여지고 있지 못한 듯하다. 아무리 출판계는 단군 이래 최악의 불황이라고 투덜댔다지만 이제 정말 진지하게 위기라고 받아들여야 할 때인 듯하다. 그래도 언제나 책은 책 내용으로 평가받아 왔다. 실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요새는 팬시 문구류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책이라는 매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길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세상사 없어지면 안 되는 게 얼마나 있겠나 싶다. 다만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의 사람들도 좋은 책과 만날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책은 상품이기도 하지만 인류가 힘들여 축적해왔던 지식이라는 공공재를 담고 있는 기적적인 발명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전히 가장 정확하고 가장 저렴하게 그 지식을 확장해나갈 수 있는 매체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책 유통 환경을 공공성 있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지점이 합의된다면 여러 방향으로 책의 발전을 모색해볼 수 있다. 하지만 손쉽게 벤처기업 육성 정책처럼 정부 예산을 지원하는 건 장기적으로 상황을 더 악화할 수 있다. 그보다는 문제가 되는 유통 방면에 초점을 맞춰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실효성 있는 해결책은 잘 모르겠다. 더는 사정을 자세하게 몰라서인 것 같다. 사실상 지방 도서 유통을 독점하고 있는, 그러나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센 같은 업체를 공영화한다던가 아예 전국 도서관을 공항 면세점처럼 예외적 도서정가제를 적용하지 않는 책 유통 플랫폼으로 활용한다던가 하는 현실과는 먼 다소 공산주의적 아이디어만 떠오를 뿐이다.


일하는 와중에 짬짬히 썼다 ㅠㅠ 고쳐야 하는데 힘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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