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사그라다 파밀리아 감상기

갑자기 조용히 휴직 기간을 보내려고 했던 계획을 변경해 스페인에 가기로 결정했다. 홍콩 항공권을 검색하다 문득 이 정도로 오래 쉴 기회가 인생에 자주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위기감이 들어 스페인 행 항공권까지 검색했는데 예상보다 저렴해서 충동적으로 일주일 후에 출발하는 걸로 질러 버렸다. 스페인 행의 목적은 처음부터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하나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외에 스페인에서 특별히 더 보고 싶은 게 없었기 때문에 5박 6일 내내 깔끔하게 바르셀로나에만 머물기로 하고 목적에 맞춰서 숙소도 아예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잡았다.

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가보고 싶었는가 하면 직접 가서 보지 않고는 그 공간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공간이 없었다. 1800년대 후반에 착공한 건물이고 유명한 사람이 만든 공간인데 아무리 남들의 여행 사진을 들여다봐도 위키피디아의 방대한 이미지를 다 훑어봐도 그 공간에 들어간 기분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는 유럽에 많이 있는 성당의 꼴을 하고 있긴 했지만 내외부 막론하고 그동안 봐왔던 어떤 성당과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장식들이 툭 튀어나와 있어서 그냥 기이하게만 느껴졌다. 실제 건물이라기보다는 게임 그래픽 같았다. (특히 와우 실버문)

한국에서 바르셀로나까지는 한 번 경유를 거치긴 했지만 장장 열 일곱 시간이나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더구나 웬일로 비행 내내 잠이 안 와서 아주 괴로웠다. 초주검이 되어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건 저녁 무렵이었고 간신히 스낵으로 허기만 면하고 쓰러졌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바로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러 갔다. 도시 어디에서나 잘 보이는 지대에 자리한 대다수 유명한 교회들과 다르게 좀 낮은 지대에 자리하고 있는지? 구글 지도를 켜고 이게 맞는 방향인가 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다짜고짜 모습을 드러내서 좀 당황스러웠다.

성당을 설계한 건축가 가우디가 생전 유일하게 완성된 걸 보았다던 가장 오래된 입구

그렇게 처음부터 깜짝 놀랐고 다다음날 두 번째 방문했을 때도 계속 놀랐다. 일단 입구인 탄생의 파사드부터 너무 대규모로 이상하다. 촛농처럼 뚝뚝 흘러내리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일상 세계와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존재감이었다. 건축은 특히 이렇게 큰 프로젝트라면 여럿의 자본이 투여되는 만큼 타협과 절충을 많이 거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모양을 이런 스케일로 관철시켰지? 싶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가우디가 석고 모형을 잘 만들어서 관계자들에게 프리젠테이션하는 기술이 좋았던 듯….)

그런데 외부는 약과였다. 내부는 더 이상했다.

들어가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까마득한 윗 부분이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돌들이 무슨 종잇장처럼 쓱쓱 잘려 천정을 떠받치고 있었다. 가기 전에 본 사진들에서는 기둥과 천정의 갖가지 장식들이 다소 잡다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실제로 보니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모든 게 큼직해서 사진으로 보듯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고개를 한껏 들어 시선을 돌려가며 조금씩 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만히 서서 보는 것보다 이동하면서 봐야 크기가 실감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모든 게 컸지만 보는 사람을 내리누르는 고압적인 느낌을 주지 않았다. 엄청난 굵기와 높이의 기둥이 쭉 도열해 있는 공간인데 온화하기까지 했다.

주춤주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가만히 신도석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컬러풀한 공간이었다. 어쩌면 이토록 큰 공간임에도 위압적이지 않을 수 있는 건 내부가 엄청 형형색색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쓰인 석재부터 스테인드글라스까지 점잖음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채도와 명도였다. 게다가 그것들이 전체적으로 아래가 짙고 위로 갈수록 밝아지는 그라데이션을 이루고 있어 딱 촌스러워지기 좋은 조합이었다. 그런데 촌스럽지 않았다. 촌스럽기에는 빛이 너무 찬란했다. 미추를 논하기 이전에 감동부터 시켜버리는 공간이었다.

사실 강제로 감동을 시켜버리는 건 앱스가 최고였다. 특히 앱스의 허공에 매달려 있었던 예수상 때문이었다. 멀리서 볼 때는 잘 안 보여서 몰랐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예수상의 신체가 굉장히 리얼했다. 신이라는 아이콘이 아니라 피와 땀이 흐르는, 살아있는 평범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실제 사람을 모델로 조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는 인류를 대신해 죄를 속죄하고 있는 신의 아들이다. 그 신의 아들이 모든 사람을 사랑해 지상에 내려왔다가 고통스럽게 죽어 가고 있으며 하늘을 올려다 보고 아버지를 찾고 있는 즈음이다. 조금이라도 성경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순간의 모습이었다.

이걸 보고 울컥해서 기도할 뻔했다. 그리고 뭔가 아주 뻔한 신파 멜로드라마의 수법에 당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 성당의 요소를 하나하나 떼어 보면 유치하게 느껴질 법하다. 조금 기독교 테마 파크 같달까…. 하지만 테마 파크건 뭐건 완벽하게 이렇게 한치의 의심 없이 올곧게 신을 찬양하는 거대한 구조물이라니 웬만해선 설득될 수밖에 없는 진정성이지 않는가…. 천진하고 순수한 마음들이 얼마나 모여야 이런 게 만들어질지. 아무튼 가우디를 비롯해 200년 동안 이 성당을 축조해가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고 굉장했다.

반짝…반짝…

성당을 나올 땐 들어온 문의 반대편으로 나오게 된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다룬 수난의 파사드 쪽이다. 수난의 파사드는 대비를 위해서인지 탄생의 파사드보다 장엄한 느낌이 두드러진다. 다 좋았지만 아기자기하면서도 거대하게 동심 기독교의 세계를 보여주는 탄생의 파사드 쪽이 더 좋았다.

두 번째 방문한 날에는 폐문 시간까지 있다 밖으로 나왔다. 마침 해가 지고 있었고 석양을 받은 수난의 파사드는 이름답지 않게 아름다웠다.

뭔가 마무리를 짓고 싶은데 내일 출근이라서 이쯤에서 끝내야겠다. 그래도 남은 휴가 기간 동안 하기로 한 것들 대충 다 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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