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자면 가장 먼저 고양이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모든 고양이는 거의 사랑스럽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나와 함께 사는 열두 살짜리 고양이 여포는 특히 사랑할 만한 고양이다.

나이 12세 (인간 나이로 60세 가량)
종 코숏 (=코리안 숏헤어)
일단 예쁘다. 여포는 회색 얼룩무늬 고양이인데, 그 회색이 기가 막히다. 흰색이 많이 섞인 보드라운 회색으로, 러시안블루의 매끈하고 순도 높은 회색과는 다른 포근한 빛깔의 회색이다. 코숏 고양이에게서 쉽게 보기 힘든 털 색이고 털 길이도 다소 긴 편이라 왠지 이국적이다.
사실 이국적인 느낌이 있는 이유는 털 색 때문만은 아니다. 여포는 수의사가 놀라 할 정도로 몸집이 크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몸무게가 대략 8~9kg를 오가는 편인데 보통 코숏 고양이가 4~6kg 전후라고 하니 거의 두 배 가까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무게가 많이 나가는 이유는 약간 통통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골격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다리가 길다. 어느 정도냐면 사람 보폭에 맞춰 만들어진 집의 계단을 두 발로 폴짝폴짝 뛰어 오르내리지 않고 마치 사람처럼 성큼성큼 한 발 한 발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다.
여포의 외양 중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꼬리다. 여포의 꼬리는 다른 고양이들처럼 곧게 뻗어 있지 않고 끝이 약간 물음표 모양으로 굽어져 있다. 태어날 때 꼬리뼈가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여포의 어미는 길고양이 출신으로, 임신 상태에서 간신히 구조되었다. 구조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새끼를 낳았는데 출산하는 도중에 힘이 빠져버려 마지막 새끼는 사람 손으로 꺼내야 했다. 그 마지막 새끼가 바로 여포였다. 이렇게 구사일생 살아났지만 억지로 꼬리를 잡아 빼내는 과정에서 연약한 꼬리뼈가 부러졌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니까 이 꼬리는 태생적인 훈장 같은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건 여포의 성격이다. 고양이마다 성격이 다른데 여포의 경우는 고맙게도 함께 살기에 매우 편한 성격을 갖고 있다.
일단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별로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편이다. 대부분 눈빛으로 조용히 의사를 전달하기 때문에 거의 우는 일이 없고 울어도 자그마한 목소리로 애원하듯 운다. 목욕을 하거나 병원을 가거나 이사를 할 때가 아니라면 오래 울지도 않는다. 사료도 아무거나 다 잘 먹고 화장실 모래도 가리지 않는다.
태어나서 다른 형제들과 몇 개월 함께 자란 덕분인지 막내답게(?) 애교도 많다. 외출했다 들어오면 총총 달려와서 반겨준 후 내 시야가 닿는 곳에 계속 머물면서 관심을 바라는 눈으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오래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다가가서 만져주기라도 하면 언제나 속없이 기뻐한다. 특히 배를 만져주는 걸 좋아하는데 얼마나 좋으면 그릉거리며 침을 줄줄 흘리기도 한다.
이렇게 순한 고양이지만 그래도 고양이는 고양이. 특히 고양이답게 뒤끝이 길다. 처음 만났을 때 큰 소리를 내서 여포의 경계를 산 아버지의 경우 10년이 가도록 여포의 꼬리도 보지 못했다.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는 지인 중 하나는 처음 만났을 때 무작정 여포에게 달려들었던 탓에 이후 온갖 참치 캔과 장난감을 바쳤지만 결국 손 한번 대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싫은 사람이라도 공격하기보다는 조용히 피해버리는 게 여포다운 점이다.)
그 외에도 여포를 좋아하는 이유가 참 많다.
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도 밥을 향해 돌진하는 우아하지 못한 점이라든가 늘 실패하면서도 자기 체구를 가늠하지 못하고 작은 상자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바보 같은 점이라든가,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이제 내 이야기를 조금 하고 마치려고 한다.

여포를 만난 건 12년 전인 2007년이었다. 얼굴만 알고 있었던 지인이 잠시만 분양 받은 고양이를 맡아달라고 부탁해서 얼결에 맡게 되었는데 그 지인이 그대로 호주로 떠나는 바람에 연락이 끊겨 버렸다. 그 이후로부터 여포는 늘 내 곁에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애인과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그 모든 날들에, 볕이 좋은 날에는 함께 햇볕을 즐기면서, 눈이 오는 날에는 함께 눈을 구경하면서, 이윽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내 곁에 있어주었다. 이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고맙다고, 오래 살면 좋겠다고 소리 내어 말해 보아도 여포는 연둣빛 말간 눈으로 어리둥절하게 바라볼 뿐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종종 슬픈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나마 전해본다. 세상 모든 고양이가 다 좋지만 내 고양이가 최고다.
글쓰기 모임에 냈던 여포 찬양….. 원래 계획은 일반적인 고양잇과 동물들의 아름다움에 비해 여포만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에 답하는 대서사시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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