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공포영화의 주인공 마인드

마치 공포영화의 주인공처럼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그 찬장을 열어보고야 마는, 결국 썩어 냄새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야 마는 그런 일상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썩었다는 데 놀라기보다 ‘내가 이렇게까지 두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던가?’라는 데 놀라고 있다. 나는 특별히 맷집이 좋거나 용감한 사람도 아닌데, 불길한 문은 열지 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야 하는데,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어렴풋이 알면서도 빼꼼 문을 열고야 만다. 꿈 속의 나를 컨트롤하지 못하고 3인칭 시점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예로부터 집착을 하게 되면 도저히 그만둘 줄을 몰랐다. 대부분 끝이 참담하리라는 예감을 무시하고 끝을 보았다. 뾰루지는 괴롭혀서 덧나게 만들었고 거스러미는 올라오는 족족 찢어버렸고 상처는 딱지가 지면 헤집었고, 홀린 듯 스스로를 자학 상태에 몰아넣어 왔다. 심지어 그 자학에는 어떤 카타르시스도 없었다. 그냥 악취를 참는 듯한 고행이었으며 어디다 내놓기도 무안한 고행이었다. 너무나 한심한 꼴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나는 지금보다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기대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 누가 평가하거나 이끌기 전에 나 스스로 그 좋은 삶에 대한 믿음과 의욕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장을 쓰면서도 반사적으로 회의가 치민다. 과연 내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이곳에서? 어차피 또다른 악취에 맞닥뜨리게 되지 않을까?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 몰라도 이 세계에서의 삶에 일말의 기대가 생기지 않는다. 늘 그랬던 것 같지만 길을 잃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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