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죽어야 된다

텍스트를 집요하게만 이용한다면 어느 순간 ‘아 이게 바로 내 생의 끝이구나’ 하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도 같다. 만약 내 삶의 유일한 가치가 여포의 보호자 기능을 하는 데에 있다는 명제를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치밀하게 논증하는 데에 성공했다면, 여포가 명을 다할 경우 나도 따라 죽지 않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랑 평생 살아줘

물론 여포 죽는다고 나도 죽는다는 식의 낭만적(?)인 드라마는 지양하겠지만… 어쨌든 어떤 식이건 더는 살 이유가 없다는 확신이 어느 순간 들었으면 좋겠고, 그 순간 주변에 민폐 끼치지 않고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침착하게 조사하여 실행에 옮길 용기를 갖고 싶다. (미래의 나야 제발 요상한 사술들로 연명하기보다 영원한 단념을 택해 주기를…!!!)

문제는 대체 어떻게 확신을 가질 수 있지? 이 부분이다. 아무리 죽지 않을 수 없는 결말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생명인 이상 죽음이 무서울테니 결국 은연중에 죽음을 회피할 논리를 찾게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레 상황이 바뀔 수도 있고 내 지식의 한계로 발견치 못한 요인이 있었을 수도 있고 등등 빠져나갈 구석은 많고 많다.

그러한 회피를 막을 기제로 유일하게 떠올릴 수 있었던 건 결국 공개되어 단 한 명이라도 읽은 이런 텍스트 형태의 언명이다. 그동안 써둔 텍스트를 배반하는 수치를 겪지 않기 위해 결국 그 텍스트의 결과로 나온 결론에는 등을 돌리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왔던 시간만이라도 무로 돌리고 싶지 않으니까.

아무튼 아직도 내가 뭔지 모르겠지만 생명인 이상 죽음으로 일대기가 끝날 거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게 무섭고 기대된다. 죽는 순간은 인생에 단 한 번인데 그때가 내 인생이 어떤 이야기였는지 완결된 상태에서 이해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그 이야기가 우수하거나 대단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그게 뭔지, 그러니까 비극인지 희극인지 부조리극인지 동화인지 등을 알고 싶다.

그런데 그런 이해를 하려면 살아있는 동안 최대한 나를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 삶의 각 챕터마다 두드러지는 주제를 발견하고, 그 주제들이 다음 챕터에서 발전되거나 일그러지는 것을 지켜보고, 그 모든 것을 성실하게 발굴해서 글 형태로 고정시켜두지 않으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면 부인하게 되거나. 자기가 살아온 역사를 아무 부담 없이 버릴 수 있는 사람의 삶은 특별히 알 필요가 없다. 자기 삶의 서사를 필요에 따라 입맛대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의 기록이란 그냥 문자 덕후?의 나르시시즘에  불과할 뿐이다. 짜임새 있고 이유 있는 죽음을 맞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사관의 태도로서 자주 나를 돌아보고 타임라인을 간결하게 집중하고 정비하도록 해야겠다. 흑흑 너무 피곤한 일이다…

사실 텍스트의 언명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지 텍스트가 얼마나 글쓴이를 꽁꽁 옭아매어 자신에게서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드는지까지 적고 싶었는데 졸려서 얼른 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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