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 친구로부터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다”와 같은 말을 들었을 때, 혹은 남동생의 여자친구가 동생을 위해 매일 점심 도시락을 싸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할머니가 나를 보며 “여자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결혼을 해야 한다”는 걱정을 할 때… 나는 그들이 같은 여성이지만 가부장적 질서에 복무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나는 섣불리 그 여성들을 비난할 수가 없다. 무례하게도 그들을 멍청한 피해자라고 여겨서가 아니다. 내가 가진 감수성, 그리고 그 감수성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이 경우에서는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까칠한 반응)가 내가 가진 부당한 권력 덕분에 나오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갖고 있을수록 까칠함을 드러내기가 쉽다. 까칠할 수 있는 능력을 그냥 맥락의 차이라고 퉁치는 건 좀 비겁하다. 특히 내가 섣불리 포기하지도 못하고 해체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도 않는 부당한 혜택들, 이를테면 학벌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문화적 기득권,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경제적 여유, 지방이 아닌 서울에 거주하는 지역적 특권, 주류에 가까운 성적 지향과 신체 조건 등이 있기에 가능한 감수성과 까칠함이라면 더욱 그렇다. 설령 그 까칠함을 가부장적 질서를 체화한 사람이 아니라 가부장적 질서 그 자체에 대한 까칠함이라고 언어적으로 회피해서 규정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이건 언어 체계 안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의사 표현이 실제 사람에게서 사람에게 작동할 때 그 권력적 바탕이 어떠한가에 대한 것이니까. (아무리 너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네가 체화한 그 무엇을 비난하는 거야, 라고 설명을 하더라도 비난을 말하는 사람과 비난을 듣는 사람의 구도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특히 그동안 숱한 정치적 의견 표현을 해왔지만, 그 표현이 실제 내가 당한 차별을 변혁하려는 행위가 아니라 그저 내가 학습한 취향을 드러내는 행위로만 작동했다면 그것은 결국 내가 속해 있는 수많은 이익 집단 중 하나인 주류 엘리트;;;로서 표출한 자부심 이상의 의미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아니, 자부심 표출이기만 하면 다행이지, 그 이익 집단이 부당하게 권력을 획득해온 구조를 공고히 하는 데 암암리에 기여하는 행위일 수도 있었다.
과거 자기 표현 욕구에만 휘둘려 가벼이 놀린 말들에 대해 반성한다. 입이 근질거릴지라도 일단 닥치고 내가 하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먼저 생각해보는 게 너무나도 필요하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