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제를 잊을까봐 간단하게 기록하려고 한다. 나의 가장 강렬한 반면교사들…
첫 직장은 주로 순수예술 소식을 다루는 소규모 지역언론사였다. 그때 정말 많은 예술인들을 만났고 늘 뭔가 써야 했고 그 결과 말도 안 되는 쓰레기 글을 엄청나게 토해냈었다. 그리고 결국 강익중을 좋아하는 고상한 대표의 비위를 상하게 해서 6개월만에 짤렸다. 이곳을 계기로 고상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환상을 참 많이 없앨 수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
두 번째 직장은 중규모 신문사였는데 여긴 조금 나았다. 일단 사무실에 앉아 기사글을 쓰는 일 자체는 적성에 맞았다. 사실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의 기사 아이템이 시시껄렁한 학교 홍보에 불과하니 취재도 너무 뻔했다. 취재원(대부분 교수거나 학교의 고위관계자)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비싼 음식 얻어먹고 사무실로 복귀해서 취재원 측의 이야기를 가장 선의로 해석한 후 나름의 근거를 정리하여 기사처럼 만들면 되니까. 누구에게 피해를 끼치기도 어려운 소소한 내용들이라서 별로 양심에 찔리지도 않았다. 어쨌든 한동안은 나름 안정적인 일자리였고 게다가 왠지 국장과 대표가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어서 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위 사수놈이 지랄맨이었다. 내가 기사를 제출할 때마다 마치 고든 램지처럼 분노로 몸을 떨며 독설을 하곤 했다. 그는 내가 시사인의 어떤 여성 기자가 쓰는 유려한 문학적 기사를 쓰게 되길 바랐다. 당시에도 왜 모든 기사를 르포 스타일로 쓰라고 하지?라는 의문이 있었다. 모든 기사가 르포면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그래도 일이니까 쓰라는 대로 쓰려고 노력했다.
그는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렇듯 다소 자의식 과잉인 사람이었다. 자신의 뛰어난 문장력, 그리고 끊이지 않는 화려한 여자관계들에 대해 술도 안 마신 채 몇 시간이고 이야기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 덕분에 자주 괴롭긴 했지만 그래도 퇴사의 완벽한 요건은 좀처럼 갖춰지지 않았다.
계기는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발생했다. 그날따라 왠지 각자의 특이하고 야한 경험이 화제가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나의 자리가 지랄맨 옆자리였다. 그는 어디에 가서 어떻게 앉아 있는 여자를 공략하는 방법이라며 마침 옆에 앉은 나에게 대충 시범을 보였다. 내 허벅지에 살짝 손을 올리고…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그래도 잘생긴 사람이(=나) 이렇게 하면 여자들도 은근히 좋아하지 않아?”
와!!! 너무 뻔해서 눈물이 날 정도의 대사 아닌가? 그때는 멍하게 있었고 다른 선배들이 오히려 얼굴이 굳어져서 수습했지만 진짜 저 질문에 답하고 싶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아주 아주 못생기고 한 20살 더 늙었어도 너보다는 좋아할 수 있겠다 십새야!!! …라고. 다음날 술이 과했다는 변명을 듣긴 했지만 나는 빠르게 퇴사 의사를 전달했다. 퇴사를 만류하는 어르신들의 쓸쓸한 모습이 마치 그 신문사의 미래처럼 느껴져 기분이 막 좋지는 않았다…
아무튼 주로 여기서는 지식권력의 엄청난 카르텔을 경험했다. 그런데 카르텔 그 자체보다 끔찍했던 건 카르텔에 기생하여 자신도 그 카르텔 안에 속해 있는 양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었다. 자의식이 폭발하는, 뭔가 정의롭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으면서도 하나같이 상아탑 주변부 텍스트에서 첨예하고 안전하게 전투에 임하는 사람들. 이곳을 나오며 가능한 지식권력의 휘황한 간판에 현혹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직장은 지금 다니는 회사다. (이쯤 되니 무슨 첫 번째 여자~하는 박상민 노래 같네…) 이곳에서 나를 아주 강하게 만든 사람이 대표적으로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나이 든 여자였고 한 명은 어중간한 나이의 남자였다. 둘 다 사랑 받고 싶어하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이었다. 웬만하면 억지로라도 존경의 마음을 짜내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진짜 성인인데 그럴 만한 구석이 하나라도 있어야 존경이든 사랑이든 드릴 수 있는 게 아닌가. 정말로 그런 구석을 찾아보려고 꽤 노력했다. 그들이 밟아온 삶의 궤적도 대충 알고. (식사시간마다 많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잠정적으로 그 궤적이 몇 가지 혐오스러운 특성에서 기인한다고 결론짓게 되었다. 근본 없이 흐릿하고 조악한 휴머니즘 감수성, 자기 불리한 일에는 쉽게 눈 감는 비겁함, 권력을 향한 (자주 방향을 바꾸곤 하는) 충성심 등등… 하지만 이렇게 분석할 정도로 막 대단한 악인은 되지도 못했다. 그저 이도 저도 아니게 못난 사람일 뿐이었다. 그 못남으로 인해 남을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괴롭히고 민폐를 끼치는 사람…
지금은 감사하게도 다 회사를 나간 사람들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두 사람이 나에게 미친 영향을 객관적으로 따지기가 어렵다. 그 둘이 내 혐오를 가장 크게 불러일으킨 사람들이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아마 깜빡 방심하면 그렇게 될 거라는 섬뜩한 예감 때문에 둘에 대한 혐오가 더 커진 것 같다… 아무튼 두 사람을 반면교사 삼아 민폐만 끼치는 빈곤한 사람으로 늙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품게 되었다.
뻔하게도, 조금이나마 나를 낫게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들은 위인도 유명인도 멋진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한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못난 사람들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대면하는 일이 강제된 것뿐이었다. 여전히 그들에게 치를 떨고 있긴 하지만 사실은 싸게 인생 공부 시켜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싫고 싫다 ㅠㅠ) 어쩌면 그들이 나의 그나마 좋은 부분들을 만들었다. 그런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들이 내가 갈 길의 단서를 주었다.
그런데 한편 이런 성찰(?)이 다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어차피 다 미물로 죽을 뿐일 텐데. 그래도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으니 가능한 한 버둥대고라도 싶다. 모든 모색이 종국에는 실패할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결국 다 다를 바 없는 삶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럴 때는 괴테 어르신의 격려 같은 걸 떠올린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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