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느껴본 적이 드물다. 정말 용케도 그럴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아버지쪽 친척들과 거의 만나지 않아서 제사를 거의 안 갔다. 가끔 참석했는데 작은어머니들이 다 차려놓은 제사상에 반나절 숟가락만 얹고 오는 정도였다. 내 또래 친구들이 명절이면 곱게 차려입고 곁방에서 하루종일 과일을 깎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 집은 그런 게 없어서 좋다, 정도로 한가하게 나의 처지에 감사했다.
또한 남동생에 비해 여자라고 차별받은 기억도 없다. 돌이켜보면 집안 모토가 실용주의적이라고 해야 하나, 대놓고 드러내진 않았지만 성적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던 덕에 동생보다 혜택을 받았으면 받았지 특별히 불이익을 받은 것 같지 않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긴 했는데 너무 접촉이 없어서인지 은연중에 피와 살이 있는 인간이라기보다는 한국 근대소설에 나오는 평면적인 가장 캐릭터 쯤으로 인식했었고 어머니는 거의 공정한 교육자였어서 성별 분업을 강제하지 않았다. 여중 여고를 다니는 동안 사귄 친구들은 하나같이 거울 볼 시간에 만화책 한 장 더 보기를 선택하는 애들이었고, 연애나 결혼이 아니라 모험에 환상을 갖는 애들이었다.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도 꼭 진보를 표방하는 곳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도 어떻게 희귀할 정도로 균형잡힌 시각의 사람들을 만나 어울릴 수 있었다.
이외에도 줄줄 나열할 수 있지만 아무튼 요는 내가 한국에서 굉장히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는 것이다. 나는 뭇 남성과 나를 한데 묶어 인간이라는 테두리 안에 놓은 채로 모든 경험과 사고를 구축해 왔고 그것을 나의 정체성으로 삼을 수 있었다. 환경과 조건이 조금만 달라졌다면 지금 나에게는 인간이기 전에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족쇄처럼 벗어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을 것이고 나는 그게 너무나도 잘 상상이 된다. 그건 비 남성, 혹은 비 인간과 같은 대립에 의한 정체성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나에게 이런 맥락에 있다.
얼마 전에 건설노조가 마포대교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퇴근길이라 엄청난 교통체증이 발생했다. 만일 내가 그날 마포대교를 건너야 할 일정이 있었다면 나도 짜증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뭐 그러라고 시위 집회 농성을 하는 게 아닌가. 언제나 현실에 만족하는 쪽은 갈등이 표면화되길 원치 않고 아름다운 말이나 단단한 벽으로 그 갈등을 은폐하려 든다. 그런데 마포대교를 막아버리다니, 이건 뭐 무시할 수가 없지 않나. 근래 들어 보기 드문 실력행사였다. 결은 모두 다르지만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모두가 급한 명절 귀성길 버스 문 앞에 휠체어를 갖다 댔던 장애인들이나 번쩍거리는 인천공항 바닥에 낡고 노곤한 모양새로 눌어붙어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던 노동자들, 트럼프의 반이민정책에 이민자 없는 날을 겪어보라며 파업했던 히스패닉 이민자들이 기를 쓰고 만들어내고자 했던 소란이었다.
(그래서 건설노조가 농성 다음날 “본의 아니게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퇴근길 통행에 불편을 드려 가슴 깊이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시민 불편으로 인한 채찍질, 달게 받겠습니다” 라고 입장문을 발표했을 떄 돌아가는 상황은 모르지만 좀 어이가 없었다. 대체 이럴거면 왜 그렇게 힘들여 사람들을 동원해 실력행사를 한 걸까? 집행부가 얼마나 안이하게 일을 진행했으면 이 모양일까? 아니 그들이 정말 건설노동자의 편에 서 있기나 한 걸까? 입장문은 마치 물의를 빚은 정치인의 기자회견문처럼 비굴했다.)
요새 여성과 남성이라는 단어를 평생 본 것보다 많이 본 것 같다. 그런데 곰곰히 따져보면 여성이라는 단어는 남성과 반대되는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그 정체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 그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성은 여성을 박탈당하는 건가? 트랜스젠더 여성은? 나는 성별은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애매해지기도 하고 바뀌기도 할 수 있으며, 그래서 늘 잠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주 확실한 게 있다. 차별과 혐오는 너무나도 명료하다. 심지어 차별하고 혐오하는 주체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아도 그 대상의 좌표값은 늘 명확하다. 동성애자 김치녀 빨갱이 전라도 비정규직 등의 수많은 좌표값들, 그들은 살아남기에 바빠 감히 차별하고 혐오하는 주체를 호명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 사회의 과녁들이었다. (과연 이 과녁 리스트에 한남을 갖다 댈 수 있을까?)
그러니까 나는 지금까지 운이 좋았고 용기도 부족해서 아직 여성으로서 정체화가 덜(?)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대신 ‘인간’이라는 모호한 세미 남성 정체성을 더 소중히 여긴다. 분명히 이 정체성의 근원에는 주류에 들고 싶어하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과녁으로 지목된다는 게 얼마나 무서울지 조금 알고 있다. 세상에 버림받는 아득함, 절로 비굴해지는 마음, 피해자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애써 부정하게 되는 마음을 안다. 나는 그로부터 도망친 것과 다름이 없지만, 사실은 그런 데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차별과 혐오에 직격으로 당해왔던 전 세계 여성들의 묵은 분노를, 그 분노에 의한 연대와 불법적인! 농성을 나는 어쩔 수 없이 지지한다. 나는 발악하지 않았다면 결코 듣지도 들리지도 않았을 그 목소리들에 용기를 얻고 해방감을 느끼며 얹혀가는 데에 미안해지기도 한다. 이런 감정적 동요는 나로 하여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깨닫게 한다. 어쩌면 그들을 보는 나의 마음은 마치 농성장에서 서로를 바라볼 때 느끼는 불가해한 애틋함과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요즘 아이돌 팬덤 진짜 화력이 만만찮다. 너무 세서 구경하다 보면 절로 역시 잠재된 여성의 전투력은 엄청나군!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팬덤끼리 붙을 때… 음 갑자기 젊은 사람들의 힘! 운운하는 노친네 다 된 거 같네… 그렇지 뭐… 암튼 특별히 그들이 여성 연대로서 기능하는 것 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소비자 연대 같지도 않다. 그냥 여성임을 숨기지 않고 나름의 실력행사를 하는 그들이 참 신기하고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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