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할머니, 나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 해서 들여다본 낸시 에이블먼이라는 인류학자의 책인데 보면 볼수록 막막하다. 일단 인상 깊은 구절 조금씩 추가해봄.
여성의 정규 취업 외에 비정규 노동과 급여 외적 기여 또한 계급의 상하를 막론하고 가구의 계급 위치와 정체성에 중요한 요소이다. 여성은 하층 계급의 경우 가내 도급 일로써, 중산층과 상류층의 경우 부동산과 주식 투자, 기타 방법으로써 경제적으로 기여한다. 비록 여성의 기여가 반드시 남편과 부인 모두에게 공평하게 평가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층 계급의 경우 여성의 수입이 가구의 정체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M, H, Kim 1995).
어떤 조사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보다 자신이 사회적 위치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평가하며, 남성은 가구의 수준이 여성의 고수입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박미해,홍두승 1994). 상류층의 경우 여성의 비급여성 소득이 이미 고소득자인 남편의 수입을 훨씬 초과하며, 이들 가구의 정체성과 지평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김명혜가 주장하듯이 ‘취업하지 않은 중상류층 여성을 주부라고 부르는 것은 대단한 왜곡이다(1995: 82)’.
마지막으로, 경제적 기여자로서뿐만 아니라 많은 (기혼) 여성들은 부계 친족집단을 관리하는 자이자 계급지위를 만들어 내고 이를 재생산하는 데 중요한 사회적 연결망을 키워 가는 관리자이다. 여기에는 자녀의 취직이나 결혼, 남편의 출세와 승진 등도 포함된다. 해나 파파넥Hana Papaneck은 이를 “가족 지위-생산 작업family status-production work”이라고 불렀다(1989). 이는 한국의 상류층에게 특히 중요하다(M, H, Kim 199 72, 75-79; E, Yi 1993; Lett 199872-79, 중산층 계급 유지에 수반되는 가족노동에 대한 내용 참조). 우리는 전근대적 엘리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여성의 상징적 기여의 유산이 지속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H.J. 19986: Deuchler 1977: Haboush 1991).
– 232p
예컨대 그녀의 아들이 1990년대에 한국 중산층의 간판인 대학 졸업장을 땄다 하더라도, 수십 년에 걸친 부동산 인플레이션,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대학 졸업장, 치솟는 대졸자 실업률 등으로 인해 그녀가 땀 흘려 고생해 이루어 주려고 했던 중산층 생활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외국에서 ‘고생’하는 둘째 아들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일찍 취직한 큰아들에게 희망을 걸었으며 셋째 아들이 졸업장만으로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를 걱정했다.
세탁소 아주머니의 서사에서는 그녀가 살아온 시대의 사회이동과 성 차별 이데올로기를 보여 주는 다양한 혼란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녀의 사회이동 이야기는 통세대적인 계급적·문화적 자원의 중요성을 말해 주지만, 그녀가 개인적 성취를 강조하는 바람에 종종 이 점이 무시되었다. 이렇게 그녀의 이야기는 개인적 열정과 태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것이 세탁소 아주머니가 한국을 열린 사회로 생각하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사회이동의 기회를 쉽게 잡을 수 있었던 특정 기간과 공간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녀가 말하는 가족의 사회이동 이야기에서 자신의 기여가 핵심적이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가사와 노동의 일상 속에서 자신의 실질적인 기여, 즉 일, 결정, 노하우, 지성 등이 눈에 띄지 않도록 무척 애썼다. 그녀는 남편의 자존심을 세워 주고, 가정의 화목을 도모하며, 아들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교육받을 수 있도록 기를 쓰고 살았다. 이렇게 그녀는 가장이라는 남편의 역할을 지탱해 줌으로써 가부장적 사회관계를 재생산한 셈이다.
그녀는 여자가 모든 일을 주관하고 남편의 허약한 자아를 잘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탁소 아주머니는 여성은 주어진 환경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했고, 비뚤어진 성격으로 힘들어하는 남성들을 더 동정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가족의 다양한 계급적 운명에 대해서도 자주 말했는데, 부지런함과 성장과정, 부인들의 특성을 기준으로 해 친정 삼촌들, 친정 형제들, 시집 식구 형제들을 설명했다. 그녀는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여성들처럼 가족의 앞날은 여자 하기에 달렸다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가난한 집으로 시집가면 여자만 고생하지만 남자가 부인을 잘못 만나면 온 식구가 고생”이라고 했다.
세탁소 아주머니는 남편의 학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잘 살아온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자기만큼 해내지 못한 다른 여성들, 즉 자신들이 배운 바를 행하지 않았거나 계급적 자원이 없어서 한계에 부딪혔던 여성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의 비천한 출신이 너무 창피해 좋은 조건의 결혼 기회를 잡지 못한 여성의 이야기를 해주자 그녀는 그 여자의 나약한 성격을 비판했다. 세탁소 아주머니는 계급 배경과 자본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았지만, 여자는 줏대 있는 배짱, 결단력, 심리적 통찰력, 그리고 세상을 대하는 지혜를 통해 (가족을 위해) 성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비록 남편에게 학대받으면서도 결혼 생활 내내 가족을 보살피기 위해 노동했지만 그녀는 여성이 개인적 성취만을 위해서 일하는 것에 반대했으며 ‘한 집에 두 명의 가장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243-2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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