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보통의 슬픈 날

홈페이지 디자인을 바꾼 김에 뭐라도 써볼까 하고 오랜만에 일상을 기록해본다.

음 오늘은 조금 슬픈 날이었다. 회사는 좀 그런 곳 같다. 감정을 자제해야 하는데 6년 가까이 몸을 붙이고 있는 곳이다보니 그게 잘 안 된다. 여기서 맺는 관계의 본질이 기본적으로 이해타산에 있음을 순간 까먹고 누군가에게는 기어이 마음이 가고 너무 애잔하고 그렇다. 상대는 부담스럽기만 할 애정을 잘 보이지 않게 숨기는 것도 일이다. 짝사랑도 아니고 이게 뭐람. 지금 회사 짤리면 ‘그래 이쯤에서 그만둬야지 잘됐어’ 하고 기꺼이 수용할 것 같은 기분이다.

아무튼 요새는 보통 잘 살고 있지만 가끔은 사무치도록 살고 싶지 않다. 잠시 숨을 꾹 참아서, 마치 컴퓨터 전원이 나가듯 죽을 수 있었다면 애저녁에 죽었을 텐데. 사는 게 죽는 것보다 쉬워서 살고 있다. 뭐 그렇게 대단한 생명이라고 이 나이까지 죽느니 사느니 하는 게 스스로 좀 한심하긴 한데…

물론 여포는 매일매일 아름답고 일도 이따금 즐거우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스운 트윗을 보고 낄낄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하고 하늘이 맑으면 신난다. 그럼에도 어느 새벽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기는 건 정말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가을에 접어들며 호르몬의 변화가 있는지 무슨 짓을 해도 잠이 잘 안 오는 날이 유독 많아졌다. 그런 새벽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몸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며 쓸데없는 생각에 빠진다. 아휴 왜 살아있지? 특별한 의미도 없고 지구와 인류에 기여도 하지 못하는 삶인데 감히 왜 사랑하지?

나는 많은 것들을 사랑하고 나의 사랑은 너무나도 값이 비싸다. 어쩌면 다른 이의 몫이 될 수도 있었을 사랑을 비싸게 구매하는 나에게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너무 사치스러운 게 아닌가? 이를테면 여포를 정말 사랑하는데 그 여포가 쓰는 자원이 만만찮다. 특히 쓰레기 생산량이 무지막지하다. 여포의 잘못은 아니다. 다만 여포를 사랑해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사람 중에는 나보다 더 가치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제인가는 티비에서 더 마스터라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을 해줘서 재미있게 봤다. 그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은연중에 내가 지불하는 건 그 방송국의 어떤 비정규직 노동자가 갈리는 엄연한 현실에 대한 묵과이다. 무엇이 안 그런가? 사실 이 세계를 산다는 건 걸음걸음마다 죄를 짓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그러면서도 나는 닥쳐온 겨울 플랜을 즐기기 위해 새 운동화도, 구스다운도 사고 싶다. 산 오리가 아니라 죽은 오리의 털을 뽑아 만든 구스다운을 사는 게 조금이나마 죄책감이 덜하겠지…? 이렇게 어느 때부터인가 아예 다 포기하고 사치를 남발하다가, 아예 반대로 극도로 행동반경을 최소화하다가, 또 다시 애정을 남발하다가… 이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너무 피곤하다. 나는 전혀 세계시민이 아닌데, 될 수도 없는 계급인데, 주제도 모르고 인류 차원의 감수성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세계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건, 뭐 주커버그 같은 사람에게나 자연스러운 게 아닐런지… 사랑하는 주입식 인문학 교육과 훌륭한 책들에게 내 불면의 책임을 전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공교롭게도 오늘 텀블벅에서 후원한 <사망견문록>이 도착했다. 길지 않은 에세이라 금세 읽을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본문 내용이 따뜻해서 놀랬다. (책 앞에 붙어 있던 수기로 쓴 쪽지마저…)

부록으로는 ‘나만의 장례식 만들기 가이드’가 왔고 의외로 여기서 꽤 실용적인(?) 정보를 얻었다. 이 가이드를 통해 미리 나의 장례식을 시뮬레이션해 봤는데, 아니, 죽는 데도 돈이 어마어마하게 드는구나. 왜 전통 수의는 280만원씩이나 하며 공원묘지는 1000만원이나 하는 거지? 빈소를 빌리는 게 하루 최소 30만원이라고? 그게? 나의 희망이야 죽은 후 쓸만한 장기가 남아있다면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남은 잔해는 위생상 잘 태워서 하수구든 어디든 버리는 식으로 처리해주면 좋겠지만, 아무리 유언을 남겨도 결국 궁극적으로는 죽은 내가 내 유족을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어쩌면 죽은 듯 살아있는 게 더 싸게 먹히는 걸지도…

마지막으로 이 책의 본문 내용 중에서 몽테뉴의 <수상록> 한 구절을 재인용해놨는데 당연한 말인데도 지금 봐서인지 인상 깊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버린다.”

음… 예, 어르신. 옳으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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