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고

<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었다. 매우 알레고리적인 소설이었는데, 전후 독일에서 태어난 주인공과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복무한 과거가 있는 한나의 이야기였다. 읽고 나서 몇 가지 감상이 순차적으로 들었다. 일단 무엇보다도 계급적으로 가지면 안 될 도덕을 가지게 된 한나의 생이 너무나도 슬펐다. 사실 소설 자체는 작가의 말하고 싶은 욕심이 드러나서 재미는 없었다. 그럼에도 한나의 생은 너무나도 슬펐다. 슬프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며칠동안 먹먹했다.

철학 교수의 아들로 태어나 15년을 살아왔던 주인공과 36년 평생을 문맹이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왔던 한나에게는 너무나도 명백한 계급적 차이가 느껴진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계급이라기보다는 인텔리겐치아와 무지렁이 또는 전쟁 후에 태어나 교양의 혜택을 받은 젊은 남자와 그렇지 못한 늙어가는 여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소설이 지칭한 대비는 이 모든 것을 조금씩 포함한다.

그런데 왜 한나는 주인공과 위험한 사랑을 시작한 걸까? 그 스스로가 의도치 않았을지라도 언젠가는 주인공이 자신을 치명적인 수치심으로 몰고 갈 것임을 알았을 텐데. 물론 주인공이 아주 젊고 비교적 준수했던 듯하니, 음… 그럴 수 있다.

그녀는 둥근 테이블의 평소에 나의 아버지가 앉던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그녀의 눈길은 모든 것을 더듬었다. 비더마이어풍*의 가구들, 피아노, 오래된 괘종시계, 그림들, 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 식탁 위의 그릇들과 포크와 나이프 등. 내가 디저트를 마련하기 위해서 그녀를 잠깐 혼자 둔 사이, 그녀는 자리를 떠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다가 내 아버지의 서재에 가서 서 있었다. 나는 살며시 문기둥에 기대어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치 책을 한 권 고르려는 듯 사방의 벽면을 빼곡히 채운 서가들 위로 눈길을 던졌다. 그러더니 한 서가 쪽으로 다가가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가슴 높이로 들고 천천히 책들의 등을 문지르면서 걸어갔다. 다음 서가로 넘어가서도 역시 손가락으로 책등을 문지르며 걸어갔다. 그녀는 온 방 안을 그렇게 걸어 다녔다. 이윽고 그녀는 창문가에 멈추어 서더니 캄캄한 어둠 속을, 유리창에 비친 서가의 모습과 자신의 얼굴을 응시했다.

1부에서 한나는 주인공이 자신을 위험하게 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나름대로 외적으로는 완강하게 주인공과 거리를 둔다. “너는 절대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2부에서 전범 재판에 회부된 한나는 직업적으로나 계급적으로나 주인공과 다를 바 없는 판사와 대화를 시도한다. 그 판사의 질문은 실제로 한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죄인에게 수치를 느끼게 하고자 하는 일방적인 추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당신은 자리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당신 그리고 당신 그리고 당신은 후송돼서 죽어야 해’라고 말했나요?”
한나는 재판장이 한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저는…… 제 말은…… 하지만 재판장님 같았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한나는 진심에서 그렇게 물은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달리 행동해야 했는지, 어떻게 달리 행동할 수 있었는지 정말 몰랐다. 그래서 그녀는 모든 걸 다 아는 것 같은 재판장에게 그 같으면 어떻게 행동했겠는지 듣고 싶었던 것이다.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독일의 형사재판에서는 피고인이 재판장에게 질문을 하는 것은 관례가 아니었다.

한나는 그저 평생을 문맹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도피하며 떠돌아왔고, 어쩌다보니 전쟁 때 그럴 수 있는 일자리를 선택한 것뿐이었다. 그게 강제수용소의 간수였을 뿐.

3부 말미에 한나는 자살한다. 그것도 석방되기 하루 전에. 이제 곧 오랫동안 교도소에 수감된 한나에게 아무 말 없이 책을 녹음한 테이프를 보내주던 주인공, 즉 사랑하는 사람과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게 확실해졌음에도 갑작스럽게 죽음을 택한다.

나는 한나의 자살이 주인공의 잔인하기 짝이 없는 질문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수치심이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부당한 슬픔이건, 어쨌든 주인공의 이 질문이 죽음을 택할 정도로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당신은 재판 과정에서 언급된 사실들에 대해서 재판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내 말뜻은 우리가 함께 있었던 당시에는, 내가 당신한테 책을 읽어주던 그 당시에는 그 일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느냐는 거예요.”
“그게 그렇게도 마음에 걸리니?” 그러나 그녀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누구도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일 또는 저 일을 하게 만들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느낌을 가졌어. 그리고 넌 알 거야. 그 누구도 너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너한테 해명을 요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야.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한나는 끝끝내 읽기를 배우지 말았어야 한다. 주인공과 그 아버지, 판사들과 여타 단죄하는 사람들은 끝없이 도피와 배반을 반복하는데, 왜 한나는 홀로 읽기를 깨치고, 주인공을 이해하며 자신을 부담스러워 하는 걸 알 수 있게 되었을까.

한나의 자살 후 주인공은 한나가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여성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전달해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교도소장에게서 전해듣는다. 또한 한나가 감옥에서 강제수용소를 다룬 책들을 읽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한나가 이것들을 다 읽었나요?”
“그녀는 적어도 이 책들을 신중하게 주문했어요. 나는 여러 해 전에 그녀를 위해서 강제수용소를 다룬 서적들의 총목록을 구해주어야 했어요. 그리고 작년인가 재작년에는 강제수용소의 여자들, 즉 여자 수감자들과 여자 간수들을 다룬 책들을 알려달라고 부탁했어요. 나는 시대사 연구소에 편지를 써서 그녀의 요구에 맞는 특별 문헌목록을 우송받았지요. 슈미츠 부인은 읽는 법을 배운 뒤로 곧장 강제수용소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결국 한나는 모든 것에 등을 돌리고 결국 죽어버렸다. 정말 비극적이라는 말 외에 다른 무슨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보낸 사랑은 응답받지 못했고 던진 질문은 대답받지 못했고 뒤늦은 이해는 용서를 받지 못했다. 어떤 것도 제때 가닿지 못했다. 모든 게 어긋났고 다시 돌이킬 수 없다. 다 죽었으니까. 결국 이렇게 모두는 시대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걸까? 어떤 발버둥을 치더라도? 아마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다. 어쩌면 작가가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조차 시대의 피해자라는 운명에 처한 자기 자신에 대한 변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한나의 뒤늦은 이해, 그러니까 그녀가 강제수용소에 대한 책을 읽고, 죽으면서 깡통에 담긴 자신의 모든 전재산의 처분을 마지막 피해자에게 넘긴 그 지점에 어쩌면 희망이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고 애써 생각하고 싶다. 혹시 주인공이 한나에게 앞서의 잔인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그러면 한나는 자살하지 않고 출소하여 모든 어긋난 것들을 위로하고 그로부터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주지 않았을까? 안전하게 마비된 각자의 삶을 위해서는 만나지 말았어야 할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이룬 기적이 아니었을까?

지금 나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고 있다. 너무 많은 시대의 피해자들에게 무심하고 종종 잔인한 의문을 가졌다. 내가 몰랐던 바까지 포함해 부끄러워야 할 것이며 그럼에도 부끄럽고 싶지 않다. 이제 내가 만나야 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읽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수많은 부끄러움들을 직면하고 이겨낼 강함을 가질 수 있을까? 하지만 만나야 한다. 그건 확실하다.

오랜만에 집에서 타자를 쳐서 그런지? 여포가 자꾸 내 손을 사냥한다. 너무 진지하지 말라는 걸까… 아무튼 결론은 전쟁은 안된다. 죽지만 않으면 그래도 어떻게 해볼 수 있다. 그런데 죽으면 영원히 끝이다. 수많은 사람이 어긋나버린다고 끝이라고 그 무게를 부디 알라고 미친 전쟁광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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