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나의 진짜 아이들

정말이지 절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인생의 선택들이 있다. 이를테면 나에게는 심시티던가? 심즈던가? 아무튼 중학교 때 게임을 좀 쉽게 플레이할까 해서 치트키를 쓰기로 한 결정 같은 것이다. 별 거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내게 그 결정은 중요한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이후 오랫동안 치트키처럼 초법적인 방식으로 간편하게 얻은 보상에 맛을 들인 나는 결국 게임 내 적법한 모든 절차들에 몰입하지 못하고 시시하게 임하게 되었다. 그것은 모든 게임, 가끔은 학업에서조차 치트키부터 찾게 되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제는 치트키로 얻은 보상은 대부분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때문에 치트키 찾는 습관을 경계하려고는 노력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트키를 쓸 수 있는 내가 사라진 건 아니다.

<나의 진짜 아이들>은 추천을 받고 읽기 시작한지 꼬박 한 달이 걸려 덮을 수 있었다. 전개나 사건이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았는데 그래서 읽는 데 오래 걸린 듯하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슴슴하지만 구성의 아이디어 자체가 재밌다. 주인공 패트리샤가 인생의 결정적 순간 yes라고 대답하는지 no라고 대답하는지에 따라 이후의 인생이 각각 다르게 흘러간다는 걸 보여주는데 결정적 순간 이후 주인공 이름도 달라지고 심지어는 책의 종이 질도 달라진다. (책 만드는 데 고생했겠다…)

아무튼 뭐 다들 패트리샤와 비슷하겠지. 당연하다. 미래의 나는 과거 내린 선택들과 현재 내리는 선택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나를 견딜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나는 죽을 때까지 오로지 나와 마주하고 있어야 하며 그 내가 혐오스러워도 진짜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 때문에 최선을 다해 잘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게 참 피곤하다. 나를 만들 결정적 순간이 언제였는지는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되니까 결국 매사 게으르지 말고 스스로를 예민하게 검토하며 살아야 한다는 방법밖에 없는데, 아 그건 잘 되지도 않고 너무나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생각해보니 얼마 전 종영하기까지 즐겁게 봤던 드라마 비밀의 숲도 이 주제를 비중있게 다루었네. (물론 더 비중있었던 건 두나배의 코트 라인업…)

<나의 진짜 아이들> 속 몇몇 구절 메모해본다.

혼란스럽군, 그녀는 생각했다. 다시 혼란이 찾아왔고 어쩌면 정말로 간호사를 겁주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녀의 어머니도 그녀를 겁주지 않았던가, 그녀는 다시 답답한 착한 딸로 되돌아가 늘 양보하고 미소 짓고 자신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맹렬한 보살핌을 내뿜어야 하는 게 싫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뜨리고 싶지도 않았다.

간호사가 안전하게 치워두었던 새로운 돋보기용 처방전을 들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파멜라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을 기억해보았다. 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렴, 그때 그녀는 그렇게 말 했었다. 어쩌면, 네 예술을 따라가, 그렇게 말했을지도. 물론 그때 파멜라는 전혀 유명하지 않았고, 장차 유명인이 되리라는 표식도 없었다. 그저 그녀가 가르쳤던 수백 명 또는 수천 명의 여학생 중 하나였다. 학교가 통합되었을 때에는 남학생도 가르쳤지만 언제나 특별하게 기억나는 건 여학생들이었다. 남자들은 이미 충분히 누리고 있었다. 여자들은 자신을 우선시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다. 적어도 그녀는 확실히 그렇게 배웠다. 선택을 내리는 데 도움이 더 필요한 쪽은 여자들이었다.

그녀도 선택을 했다. 그녀가 느끼는 기이하게 중첩된 두 삶과 모순되는 기억들을 생각해보면 마치 두 개의 역사를 통과해 여기 요양원이라는 한 점에 도달한 것만 같았다. 그녀는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p.17

 

그녀는 며칠간 예술작품과 건축물을 보고 오르산미켈레 성당 근처에서 찾아낸 ‘페르케 노!’라 는 이름의 작은 가게에서 젤라토를 먹고 그라니타를 마시며 보냈다. 젤라토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순수하게 얼린 과일이었는데 수박, 레몬, 딸기 등 상상할 수 없는 맛이 났다. 다시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젤라토를 먹으며 성당 외곽의 벽감에 안치된 베로키오의 조각상, 그리스도의 상처를 찔러보는 의심 많은 도마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자신을 활짝 열고 상처를 찔러보게 하라, 그것의 의심에 대처하는 그리스도의 방식이었다. 어린 그녀가 종교에 관해 유치한 질문을 던지며 보이지 않는 예측 불가능한 선을 넘어버릴 때마다 어머니가 벽장에 가두어 버렸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그녀는 평생 열등한 것, 모조품을 가졌다. 젤라토 대신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진품 그림 대신 복사품을 봤으며 맛있는 이탈리아 음식 대신 맛 없는 영국의 배급식량을 먹었다. 이탈리아에서처럼 그녀의 영혼을 건드린 것은 영국의 자연과 음악, 시뿐이었다. 그것들도 그녀를 하느님 가까이 데려갔지만, 피렌체에서는 모든 것이 그랬다. 좁은 거리의 돌멩이 하나하나가, 집들의 금속 돌출 보루가, 산 지오바니 세례당의 금빛 지붕과 산로렌초 성당의 구석구석이, 멜론과 프로슈토의 맛이 그랬다. 마치 판테온 신전의 돔 천장을 통해 보이는 둥근 하늘 위로 올라가 천국에 닿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젤라토를 먹으며 자기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마침내 돈이 떨어져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마지막 남은 리라로 기를란다요의 <최후의 만찬> 복사품을 사고 굶주린 채 완행열차 3등칸을 타고 유럽을 가로질러 영국으로 돌아갔다. 어느 이른 아침 프랑스 어디쯤에서 나이 지긋한 부인이 자기 커피와 크루아상을 나눠주었다. “영국인들은 왜 음식을 이해하지 못할까.” 그녀는 아무도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다. “유럽에 오기 전까지는 평생 제대로 된 음식이라는 걸 먹어본 적이 없다니까.” 파나마 모자를 쓴 노인이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말을 다른 승객들에게 통역해주었다.

“적어도 지금은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있구려.” 노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패티가 파리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할 때까지 레지스탕스 시절 자신의 활약상을 계속 들려주었다.

pp.90-91

 

“종양 제거 수술을 받으면 이 과정을 오래 끌 뿐이고 그러면 고통만 길어질 거야.” 비가 말했다. 마지막 침묵과 통증의 2주일이 찾아 오기 전에는 투병과정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넘길 수 없을 때도 그라니타를 마셨다. 세 아이 모두 피렌체에 있었다. 플로렌스는 학기 말에 혼자서 기차를 타고 왔다. 그러나 마이클이 마지막 숨을 쉴 때는 비와 팻만 곁을 지켰다.

“처음 마이클을 정자 기증자로 초대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가족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팻이 마이클의 눈을 감기는 순간 비가 말했다. “삶이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는 게 너무 웃기지 않아?”

“그가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정확히 표현할 단어가 없어.” 팻이 울면서 말했다. “그는 우리 아이들의 아버지였고 우리의 간헐적인 연인이었고 우리 모두에게 퍽 좋은 친구였어.”

그는 유대교 의식에 따라 유대인 묘지에 묻혔다. 팻은 유대교의 장례식을 처음 보았는데 그동안 보았던 어떤 장례식보다 감동적이었다.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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