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생각을 하고 살아야

나의 결정이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결정일 경우 최선을 다해 그 결정에 대한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 근거는 내 결정에 영향을 받을 누군가가 충분히 납득 가능할 수 있을 정도면 좋고 최소한 미래의 내가 부끄러움 없이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여야만 한다.

이를테면 아이를 낳겠다는 결정은 가장 크게는 생길 아이를 포함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휘말리게 하는 결정이다. 대다수 아이들이 부모에게 왜 날 낳았어? 라고 물어보게 된다는 걸 고려한다면 정말 신중해야 한다. 그냥!이라는 대답은 너무나도 끔찍하다. 적어도 그 아이가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대략 3만 일의 아침을 맞아야 하는 데 대한 일말의 위로를 줄 수 있는 대답이어야 한다. (차라리 피임에 실패했어 미안해ㅠㅠㅠㅠㅠㅠ가 낫다… 그건 납득할 수 있다…)

물론 결정 당사자가 그 결정에 대한 모든 사태를 예견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예상치 못한 결과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 단지 그 결정이 얼마나 깊이가 있느냐에 따라 그 결정에서 비롯한 위기와 성공, 실패와 기쁨 등의 원인을 조금이나마 파악하고 결정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삶을 유지 보수 발전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결정에 대한 근거가 깊을수록 누군가가 그 결정을 치하하거나 비난할 때, 혹은 스스로 자신을 돌이켜볼 때 피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릴없이 운명이라고 치부하거나 엉뚱한 다른 이를 원망하거나 거짓된 환상에 사로잡히거나 하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결정을 그렇게 치열하게 하면서 살 수가 없다. 나는 대부분 이게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줄 결정이라는 걸 의식하지 못한 채 부주의하게 많은 결정을 해버린다. (그 부주의함은 비대칭적인 권력관계에서는 더 심하다.) 그런데 가끔 그 결정의 지점이 인지될 때가 있다. 요 근래 부쩍 그 지점들을 종종 느끼고 있다.

아무튼 누군가와 나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결정에 의식적으로 참여한다는 건 스트레스가 엄청나긴 하지만 드물게 찾아오는 기회기도 하다. 그렇게 인지된 결정의 지점을 치열하게 관통하고 나면, 나는 조금 더 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생각을 해야 한다. 아주 집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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