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그동안 무시해왔던 단순한 삶의 조건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집. 얼렁뚱땅 작은 집을 구매했는데 집에만 들어오면 정말 행복하다. 단순히 소유욕이 충족되었다기보단 뭐랄까, 동물로서의 원초적인 안정감이 든다. 내 둥지, 적이 쳐들어오지 못할 내 보금자리, 안전하게 먹이와 물을 섭취할 수 있는 장소. 세포 단위마다 비로소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의외로 이전 집들에서는 곧 떠날 곳이라고 생각해왔던 까닭에 온전히 마음을 놓지 못했던 것일까. 모르겠다. 집을 가져 보니 뼈저리게 알겠다. 집이란 인간의 기초적인 생활 조건이다. 그동안 집을 어차피 내 인생에서는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이며 불로소득과 투기의 대상이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경원시해 온 게 사실인데, 근본적인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다.
나이. 바야흐로 나는 30대 초입을 즐기고 있다. 가장 불행하다고 느껴졌던 20대 후반을 지나오니 매우 홀가분하고 평안하다. 물론 그 안에선 여전히 치정과 난투가 벌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는 안정되어 있다고 느낀다. 왜 그런지 곰곰 생각해봤는데 아마도 내가 나를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나를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은 되고 싶은 나와 될 수 있는 나, 그리고 되면 안 되는 나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 파악에 끝에 포기되는, ‘되고 싶은 나’들은 어쩔 수 없이 멜랑콜리를 수반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담담하게 인지하려고 하는 내 자신에게 기특함을 느낀다.
+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최악의 민폐는 남의 동정을 즐기는 행위였다. 경향적으로 그 행위는 그 멜랑콜리를 주변에 전시할 때 가장 질척하게 나타났다. 요새 책임이라는 개념을 남용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무튼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신체적 감정적 탈락은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 단도리하는 게 책임 있는 성인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그걸 함께 해주면 정말이지 기적같은 협동의 기쁨이 찾아오겠지만, 그게 뭐 늘 되는 일인가. 적어도 제발 듣는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탄해 줘. 아님 블로그라도 만들던가.
세 번째로 새삼스레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건 매트리스(..). 그동안 써오던 싸구려 매트리스를 버리고 이번에 나름 브랜드 있는 걸로 새로 샀는데 내가 참… 이렇게 질 좋은 수면이 가능했을 줄이야, 그동안 고통 받아 온 게 억울할 정도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도 있지만 오늘은 비밀로 한다. 라기보단 지금 나가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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