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가장 황당한 일 중 하나를 꼽자면 벌써 어언 7년전 일이었던가… 난생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으로 BL 동인지를 만들기로 하고 BL 커뮤니티에 김구와 장준하 커플이 포함된 동인지 예약판매 광고를 했다가 김구 유족 재단의 항의 연락을 받았던 일일 것이다.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한 유족 재단 대표는 자신은 고려대학 총장이나 대학 재단 관계자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며 만약에 광고대로 동인지를 낼 시, 나를 고소하는 건 물론 내가 학교를 다닐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했다. 에구머니나!
사실 당시에는 그 협박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크게 겁먹진 않았으나 유족들이 분노하고 슬퍼하고 있다는 데서는 좀 흔들렸다. 심지어 유족 재단 뿐만 아니라 왠지 내 편이 되어줄 것만 같았던 BL 커뮤니티 내에서도 장준하 김구 커플이 크게 물의를 빚었기 때문에 더 헷갈렸다. 이건 지금도 좀 흥미로운 부분인데 한국 근현대사의 존경받는 두 인물을 커플로 동인지를 만들면 국내 BL물 향유자 전체를 보는 일반의 시선이 더 나빠진다는 취지의 거부감이었던 것 같다. 이게 바로 요새 듣는 인류학 강의에서 나오는, 주류 사회로부터 공격받지 않기 위해 부득불 ‘시민성’을 획득하려는 커뮤니티의 예인가.
아무튼 나 혼자 내는 동인지도 아니었고 더 크게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김구와 장준하 커플을 포기했다. 그리고 한국인 대신 아도르노와 벤야민 커플로 변경해서 냈지. (다행히 이 둘의 유족 단체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오늘 갑자기 그 생각이 나서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반응할지 상상해보았다. 일단 바로 화가 날 것 같다. 아니, 아직 출간되지도 않았고, 누구나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판타지임을 알 수 있는 소설에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할 이유는 뭔가? 만약에 동인지가 광고한 그대로 나왔고 그 내용이 충격적일 정도로 포르노에 가까웠다면 어쩌면 이 파르르한 반응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인지는 아직 나오지도 않은 상태였고 예약판매 당시 광고한 내용은 고작 몇 컷이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분노했는지 안다. 그건 아마도 ‘신성한’ 한국 근현대사의 위인을 동성애자라는 이름으로 ‘더럽혔다’는 부분 때문일 것이다. (사실 함께 들어간 이명박과 어청수 커플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즉 실제 한국인이지만 그 관계를 사회 풍자적인 측면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못된 사람들이니까 풍자할 만하지! 라고 해서 용인된 게 아닐까?)
만약 내가 김구선생의 유족이었다면 어땠을까? 그건 잘 상상이 안 가니까,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가 어떤 소설 속에서 클로짓 게이라고 나온다면? 난 아마 오랜 기간 성정체성을 숨기고 사셨어야 했던 할아버지 인생에 안타까워할망정 할아버지를 게이라고 설정했다는 이유만으로 고인에 대한 모독이라며 분노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거 아닌가? 이성애 외의 모든 사랑을 죄악이라고 판단하지 않는 이상, 본인도 아닌 유족이 한국 현대사 속 비극적 운명을 맞은 두 남자를 게이 커플로 상상해서 쓴 판타지 소설 개요에 반대할 명분은 없다.
그러니 지금의 나라면 어쩌면 더욱 오기가 생겨 광고대로 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성애 외의 모든 사랑의 형태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폭력에 반대하기 위해서라도 포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뭐 개인적으로는 장준하선생도 김구선생도 모두 좋아하는 인물이라서 애정이 있기 때문에 얽어보려고 했던 게 있지만, 대타로 나온 벤야민과 아도르노가 ‘인문학적 상상력’이라는 제목과는 더 어울리는 것 같으니 결과적으로는 잘됐다고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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