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연극 위대한 놀이

얼마 전 연극 ‘위대한 놀이’를 봤다. 옛날에 읽었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1부를 각색했다고 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원작 소설의 중요한 효과가 충격적인 단어를 통해 뾰족뾰족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었던 걸로 기억해서 원작에 비해 연극이 아주 평평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일단 조명이 편안하게 관객석에 숨어 안전하게 감상하는 걸 방해했다. 이 공연은 독특하게도 극 초반에 관객석의 불을 끄지 않는다. 대부분의 극이 관객석의 조명을 끄고 무대를 분리시키며 “자 이제 환상의 세상으로 빠져볼까?” 하고 요청하는 것과는 반대다. 편하게 감상하는 게 아니라 두 눈 똑바로 뜨고 참담한 풍경을 목격하게 한다. 이 작품이 비극적인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조명 장치는 자못 윤리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소품은 아주… 대놓고 가짜다. 좋게 말하자면 억지로 실제라는 환상을 부여하지 않는다. 공간 연출을 대부분 마스킹 테이프로 때운다. 심지어 극 내내 물 소리가 나는 스피커를 끌고 다니며 물통이라고 한다. 누가 봐도 스피커인데!!! 그러니까 관객에게 “이건 스피커지만 너희는 물통으로 여겨야 해!” 라는 적극성을 요청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스킹 테이프를 이용한 후반부 연출은 어떤 거대한 무대 연출도 만들기 어려운 비장함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엄청난 열정으로 공연의 집중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 배우들이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배우들은 정말이지 소품과 현실의 간극만큼 고생한다. 사과가 없지만 사과를 주우러 굴러야 하고 닭이 없지만 닭의 목을 분질러야 하는 등… 대부분이 그렇다. 소품으로 스펙타클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오로지 몸짓으로 관객의 시선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러나 오히려 시선이 쓸데없는 데 분산되지 않아 담백하게 아름다웠다. 나중엔 무슨 현대무용 공연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극 몰입도가 커서 그런지 여운이 아주 오래 갔다. 오랜만에 클리셰로 표현하기 어려운 공연, 그러면서도 연극의 재미를 흠뻑 느끼게 하는 완성도 높은 공연을 만난 것 같다. 극단 하땅세 기억해야겠다. 그런데 한번 더 보려고 했더니 29일까지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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