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대학원을 갔을 수도 있었을까

근래 잠이 잘 온다. 초교가 나오고 바빠져서 잡생각을 할 겨를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요즘 공부 프로세스에서 거의 탈피하여 명백하게 노동이란 걸 하고 있는데 견딜 만하다 못해 꽤 즐겁다. 아마 이래서 대학원에 안 갔겠지? 그런데 난 그동안 대학원을 완고하게 거부해왔던 데 반해 사실은 대학원과 꽤 잘 맞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 근래 노동이 새삼스레 재미있기도 했지만 대학원에 왜 안 갔을까 싶은 나의 면모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는 나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도교수의 지랄맞음에 따라 난이도는 널을 뛰겠지…)

그동안 탄핵도 되고 만든 책이 상도 받고 연말이라 사람들도 많이 만나서 그런지 조금 들뜬 기분을 디폴트값으로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아주 미워하는 사람도 없고 애틋한 사람들만 많아져서(특히 같은 층에서 고통받는 동료들;) 절로 마음이 예뻐지고 있다. 늘 그렇듯 곧 산산조각 날 마음 상태겠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뽀샤시 필터 끼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니 약간 덩실덩실해져서 머리이어 캐리 노래 같은 걸 백만년만에 찾아 듣고 그랬다.

음… 기분이 괜찮은 김에 감히 적어본다. 내가 나를 기특해하는 점 중의 하나는 매사 불확실성을 불확실한 채로 수용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신이나 신비한 힘, 영성 등에 관해서 철저하게 불가지론적 입장에 있다는 걸 예로 들 수 있다. 요새 종교 내용을 편집하면서 더욱 확실히 그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신이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단언할 수 없는데 그건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믿음을 가질 수도 없고. 옛날에는 이 즈음에서 사고를 중단했는데 일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성격이 그렇게 변한 건지 기어이 답을 찾기 위해 있다 없다 양 측의 근거들을 모으려고 하게 되었다. 결국 답을 모르게 된다 해도 글쎄, 상관없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성실한 탐구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리하여 의외로 내가 대학원에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때때로 나더러 문학 전공 대학원에 가라고 강권하던 옛 친구를 떠올린다. 걔는 문학 배우면서 잘 살고 있을까…? 사실 공부를 업으로 삼으며 스스로를 싫어하지 않기는 쉽지 않으니 그닥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다. 뭐, 나처럼 대충 운명이려니,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이려니, 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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