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옛 사수를 만나고 한 생각들

얼마 전에 오랜만에 옛 사수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때나마 그런 좋은 사수와 일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다시금 생각했다. 만약 좋은 협력 노동을 했었던 그 경험이 있기에 지금이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게 된 거라면 이 불행도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 

불행한지도 모르고 불행한 거랑 불행한지 알면서 불행한 것 중에서는 거의 대부분 후자가 낫다. 나중에 멍청했다는 걸 깨닫는 게 더 끔찍하다. 하지만 자각된 불행 상태라도 너무 오래 이어지고 있고 스트레스가 한계에 이르러 지난 금요일에는 아깝게도 세 시 넘어 오후반차를 내고 뛰쳐나왔다. 그리고 주말을 내내 골골거렸다. 

부연하자면 사실 요즘 쓸데없이 나와 상사를 편가르기하며 나를 배척하려고 노력하시는 맹랑한 신입분 때문에 더욱 골치가 아프다. 상사는 버렸지만 신입분은 괜찮은 일꾼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서로 뭔가 말들을 주고받는 거 같은데 나는 내가 몰라야 하는 뒷수작에 어떤 대응도 하기 싫다. 어쩌면 그들이 지금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고 있어서 나타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일을 하기 시작하면 좀 나아지겠지만 내 당장이 괴로워서 미치겠다. 정말 이런 일은 쥐약이다. 그동안 껄끄러운 사람들은 피하거나 아니면 부딪히고 관계를 끝냈던 것 같다.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도 잘 달래서 지내야 하는 이 같은 관계는 난생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옛 사수는 뭐랄까 자주 만나는 건 아니지만 회사 일을 포함해 나의 인생 항로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 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아마 그 분은 만나는 모두에게 그런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사람을 잘 안 만나는 것 같다. 참 따뜻한 사람이다.

늘 그렇듯 회사 일 말고 뭔가 재미있는 일 도모하는 건 없냐고, 잡지 기획하던 건 어떻냐고 물어봐 주었는데 솔직하게 모든 게 정체되어 있는 상태라고 토로했다. 그런데 풀죽어 이야기하다가 그 와중에 나의 중요한 부분을 깨달았다. 나는 정말이지 일관되게 유명한 것/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는 병이 있었다! (물론 반대로 관심 있는 사람이 유명해지는 건 매우 행복해 했다. 여포봇이라던가…) 그렇다고 내가 유명해지는 건 또 부담스럽다(?) 돈을 많이 버는 건 좋지만… (????)

이와 비슷한 맥락인데 그래서 유명인과 개인적으로 안다던가 요즘 대세 아이돌이라던가 하여간에 남들이 훌륭하다고 한목소리로 추천하는 것들엔 전연 끌리지 않는 일종의 자만(?)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진실로 애정과 관심을 주었던 것들은 아직 충분히 남이 소화하지 않아 내것으로 만들 여지가 남아있는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동네 슈퍼 아주머니의 매일같이 반복되는 옥상 체조의 섹시한 리듬, 어린애가 길을 지나가면 재빨리 담배를 끄는 골목 여자의 말간 웃음 등) 

그 대부분은 작디작아서 일일히 이르기도 어려운, 낭만적 감상주의가 만들어낸 사소한 찰나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인정한다 해서 그걸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이 예쁨이나 슬픔, 우스움을 누군가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건 아마 은연중에 내가 사랑하는 그 찰나들에 탐구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자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어떤 정보로 여겨질 수 있을지에 대한 프레임이나 방식 같은 것은 생각해봐야겠지만… 아무튼 아예 그 유명하지 않은 누군가의 무엇에 대한 사소한 감상을 모토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게 어떤 틀로 잡혀 나올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인터뷰를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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