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그 저주를 받기에 나는 너무나도 허약하다

기필코 모든 국민들이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물론 나도 애국심이라고 할 만한 건 없지만 개인적으로 한국을 버릴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동안 함께 살아왔던 시간을 봐서 동지애, 그것도 무리라면 예의라도 차려주길 요구하고 싶다. 그러니까 여건이 안 되어 이 나라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를테면 한글로 먹고살 수밖에 없는 나 같은 사람을 봐서라도 망해라 룰루랄라 저주만 흩뿌리고 쏙 떠나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나는 이 땅에 정이 많이 들었다. 정이 든 것과는 별개로 너무나도 피곤한 땅이라는 사실도 절감했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나와 내 동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온갖 사소하고 거대한 투쟁을 평생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체념에 가까운 각오를 다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실은 그 마음을 다잡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다. 그런데 그냥 탈출하지 왜 그런 쓸데없는 힘을 빼고 있니~ 라는 뉘앙스의 말을 들으면 정말로 너무나 힘이 빠진다.

물론 누구도 이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닐 거다. 정말이지 선택해서 왔다기에는 너무나도 거지같은 나라이다. 성의없이 지어진 가건물 같은… 그나마도 최면으로 만들어진 가건물이랄까… 특히 요사이 생애 단 하나뿐일 이 조국이 심각하게 병리적인 구조(아니 구조가 있긴 한가?)라는 사실이 아주 백일하에 드러나서 매일 새롭게 질려버리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이 땅은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사실 별 거 아닐지도 모르지만. 다 늙은 여포, 선량한 가족, 가난하지만 유쾌한 친구들, 책 만드는 일 등… 물론 나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일 거다. 그러니까 삶이 사천만 개. 소스라치게 무겁다.

아무튼 탈출자 님들도 이 땅에 태어나버린 것도 인연인데 할 수 있는 만큼은 함께 노력해주면 좋을 텐데. 낄낄대다가도 이거 어떻게 하지 자 이 참람한 가운데서 출발해보자, 하고 함께 미래를 도모하려고 애써 주면 참 좋을 텐데.

마치 가라앉는 배에서 깔깔거리며 폴짝 구명보트로 뛰어내리는 듯한 탈출의 풍경들을 보자면 그래, 한 명이라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네 라고 생각하는 와중에서도 마음 한켠이 왠지 비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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