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지진을 두 번째 느낀 날

지진 혹은 전쟁 무엇이든 끔찍스러운 재해의 상황에서
: 한국법상 애완동물은 보호소에 들어갈 수 없다.

트위터에서 이 정보를 보기 전까지는 지진 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갑자기 나에게 꼼짝없이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그래, 지진이든, 해일이든, 전쟁이든 엄청난 규모의 재해가 닥쳐온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1. 그 상황에서 여포를 들고 정처없이 뛰쳐나간다: 둘 다 죽을 가능성 100%… 
  2. 여포 떼놓고 나만 보호소에 간다: 나는 죽을 가능성 50% 여포는 100% (이 나라가 만든 보호소가 ㅈ구릴 것 같다는 점은 무시하자….) 
  3. 우리 집에 충분한 물과 식량을 보유하고 여포와 꽁꽁 숨어 있으면? 둘 다 살아남을 가능성은 랜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3번을 선택할 것이다.. 귀찮아서 그런 게 아니……다. 여포를 포기하는 건 그건 지금까지의 나를 포기한다는 의미와 같기 때문이다. 여포를 버린 나는 더이상 나일 수가 없다. 다른 인격이다. 여포를 버리는 순간 영원히 얄팍한 인간A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건 고양이 찬가가 아니다.)
너무나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20대의 10년 동안을 거의 매일 여포와 지냈다. 생각해보면 여포를 거둘 때는 내 감정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함께 사는 동안 여포를 너무나도 사랑하게 되었고 지금도 그 사랑이 매일매일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내 자신에게 여포를 사랑하라는 의무를 부여해왔고 사랑하고 있다는 최면을 걸어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뭐 어떤가?

물론 고양이에 대한 사랑을 수치화하자면 모든 애묘인 그룹에서 나는 최하권알 것이다. 비싼 생식을 사서 하루에 세 번 급여하거나 매일 이빨을 닦아주거나 미용을 시켜주거나, 양변기 훈련을 시키거나… 아 그건 정말 자신이 없다.

그러나  행운스럽게도 여포는 말은 안 통하지만 짐승의 수준에서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의 말들이 나만의 선포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반응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포가 날 좋아한다는 것도 이 상황에서는 무슨 상관인가? 좋아하면 기쁘고 안 좋아하면 슬프겠지만 아무튼 내가 그를 포기하지 않아야 할 이유에는 하등 관게가 없다.

그는 여포고 고양이고 구조에 있어 우선권을 받지 못하며, 그렇기에 죽을 가능성이 백프로로 수렴하는 내 고양이다. 나는 2007년 고양이를 데려오면서부터 지금까지 그에게 수천 수만번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건 요새 들어서 더욱 심해지고 있다. 나의 시간, 그 대부분이 이 고양이를 거쳐 만들어지고 있다.

이 고양이를 사랑하는 나를 겨우 생명 부지만이 중요한 사람으로 폄하하고 싶지 않다. 나는 정말 행복했으니까. 내가 고양이를 향해 뱉은 수천 수만번의 사랑들 그리고 우리가 교감했다고 믿었던 순간들 이 모두를 휴짓쪼가리로 만들어버리고는 절대 태연히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사랑이라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도 무거운 것이다. 그래서 잘 안 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간히 마음에 들어와 부지불식간에 싹을 틔우는 인연들로 인해 지금도 과포화 상태다. 내가 사랑을 주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나의 행복을 훗날 정직하게 감당해낼 수 있을까? 부인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부인하고 싶지 않다. 정말이다.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 덕에 제가 만들어진다고, 정말 고맙다고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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