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스톤에이지를 잠시 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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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름을 달고 있는 게임을 처음 했을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마 중학생 때였을 것 같다. 동생이랑 사이좋게 게임을 했던 기억이 나니까. 그때는 정말 많은 게임을 했지만 그 중에서도 손꼽도록 오래 했던 PC 온라인 게임이었다. 얼마나 열정을 불태웠는지 그 이후에도 게임 속 깜찍하고 평화로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본풍 구석기 시대의 풍경이 마음속 고향처럼 간간히 기억 속에서 불러일으켜지곤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깜짝 놀랐다. 모바일 게임 랭킹에서 그 촌스러운(!!!) 타이틀 이미지를 발견했던 것이다. 보자마자 약간 과하게 감동해버렸고… 해서 플레이한지 이제 4일째. 레벨은 착실하게 27까지 올렸다. 그리고 전혀 질리지 않고 있다. 무섭다. ㅠㅠ

오늘 점심시간에 잠깐 짬을 내어 부득불 자동 전투를 돌려놓고 문득 우스웠다. 난 이게 뭐라고 조막만한 핸드폰 붙잡고 귀한 점심시간과 주말 새벽을 불태우고 있는가. 하고.

워낙 옛날에도 그리 복잡한 인터페이스의 게임은 아니었기에 모바일화된 지금이 오히려 더 복잡해진 듯한 느낌마저 들지만 그래도 모바일 게임이다. 아무리 펫의 능력치 조합이 다양하다지만 기본 시스템은 극히 단순하다. 당연히 난 내가 또 금방 질릴 줄 알았다. 아마 순수한 재미도만 따지자면 아아주 가끔 PC로 하는 RPG 게임들이 훨씬 고차원적으로 자극적이고 성취감을 준다. 그런 게임이 스톤에이지에 비해 딱히 더 힘들다거나 머리를 쓰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왜 그 훌륭한 게임들을 다 마다하고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조악한 구석기시대 풍경에 넋을 잃게 되는가. 만약 모바일을 런칭한 개발자들이 이런 감상을 의도한 거라면 정말 대단하다. 아마 그럴 것이다.

나는 늘 고향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경기도, 그것도 신도시는 절대로 그런 감정을 허락하지 않는 공간이다. 어릴 적 살던 집 근처에 가보면 내가 알던 공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게 완전히 갈아 엎어져 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나에겐 고향이라는 물질적 토대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걸 커가며 자연스럽게 감수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건 돈이 많든 적든 많은 한국인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공허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집으로 귀향할 수 있는 사람은 엄청난 행운아다… ㅠㅠ) 전세 아파트를 전전한 나는 향수 같은 멜랑콜리함을 느낄 감정 자본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모르겠다. 어쩌면 나의 고향은 스톤에이지의 그 괴이한 밀림 속에, 와우의 오그리마에, 대항해시대의 세비야 근해에 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클락우드나 리딩판타지 같은 판타지 소설 커뮤니티들. 어떤 사람들에겐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오는 쌍문동이 그런 것이었겠지. 그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쩌겠어, 적어도 내가 아는 한국은 그런 가상 현실로 만들어진 영토인걸.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조국의 이웃들에게 관대해지자는 자세를 가지자고 다짐하게 된다. 나는 응답하라에 죽어도 추억을 갖지 못하는데 그건 다 큰 지금에서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손 쳐도 가질 수 없는 감상이다. 정말 존재했는지 모를 그 한국의 공간은 이제 다 지나간 것이니까. 그리고 당연하게도 스톤에이지에 나처럼 향수를 느끼려면 지금으로부터 십 몇 년 전 어린 나이에 버벅거리는 맘모스(표준어는 매머드인데 그때 잘못 배워서 아직도 이게 자연스럽다) 버스 뒤에 붙어 마을 간을 이동해 본 적 있어야만 하겠지. 죽을 때까지 서로는 서로가 느끼는 향수를 모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이라는 건 한정돼 있고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지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부끄럽게도 이제서야 개인들 사이에 어떤 헌신적인 노력으로도 넘어설 수 없는 아득한 물리적인 감수성의 격차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특히나 내 조국의 이웃들과 아주 기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통의 토대가 부재하다는 사실에 적어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은 크게 절망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묻고 싶다. 우리들은 이렇게도 다양한 고향을 갖고 있는데 그게 피난에 불과했다면 어떡하지. 혹시 건강하지 못한 얄팍한 환상이면 어떡하나. 고향이라는 감정을 사고자 모바일 게임에 현질하는 나는 괜찮은 걸까…… 하지만 이 모든 걸 관통하는 결론은 하지만 이제 나는 돌이킬 수 없다는 패배감으로 수렴하고야 만다. 그래서 그냥 나는 솔직히 할 수만 있다면 다음 세대의 누군가가 가질 어떤 고향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 존재로서 조용히 소멸하고 싶다. 출판을 직업으로 택한 시점부터 그른 일이었지만. 뭐 그래, 어차피 그른 일인 거, 일단 활자에 책임감을 조금 더 가져야겠다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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