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감 혹은 전능감은 발달 과정 초기에 매우 중요한 요소예요. 그게 꼭 필요해요. 약하고 무력한 존재인 아기가 세상으로 나갈 때 전능감이란 환상이 없으면 엄마의 품을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 전능감을 너무 오래 간직하는 것은 좋지 않죠. 그 전능감은 제 생각에는 인생이 급 핀치에 몰렸을 때나 삶의 기로에서 갈피를 잡지 못할 때, 낙관과 희망이란 형태로 전환해서 꺼내 쓰면 된다고 봐요. 그런데 지금 십대와 이십대 중에는 전능감만 간직한 채 땅으로 내려오지 않으려는 경우가 일부 있어요. 그러면 현실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고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어져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를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게 되죠. 비정상을 괴로워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유니크한 존재’, 남과 다르다라고만 여기면서 어울리거나 적응하려는 노력을 포기해버리기도 하죠. 거기서 문제가 생겨요. 전능과 유니크의 관점에서 보면, 재미없고 의미 없는 삶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죠.
엄기호, 하지현, , p.36
학생과 실험을 같이 하게 되면 얼굴을 마주 대하고 이야기를 하게 되니까 좋든 싫든 긴장이 있거든요. 싫은 것도 봐야 하고, 싫은 이야기도 들어야 하고. 그리고 반응을 해야 하잖아요? 싫어도 웃든가. 전화만 해도 그게 있거든요. 그런데 문자의 경우 밥 먹다가 상대방이 짜증나는 소리 하면 이모티콘 날리면서 계속 밥 먹으면 되는 거죠. 그러니까 긴장이 없는 거예요. 항상 내가 의사소통을 컨트롤할 수 있어요. 이게 너무 좋은 거죠. 내게 주도권이 있으니까.
대면적 관계가 있고, 전화가 있고, 문자, 이메일이 있다고 하면 점점 더 내가 시간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하다 보니까 실제로 누군가를 대면하게 되면 내가 시간을 컨트롤하면서 커뮤니케이션할 수 없는 걸 견디지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하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썸, 밀당, 이런 게 너무 낯선 거예요. 나한테 너무 폭력적인 것, 감당할 수 없는 것으로 다가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 안 하려고 하는데, 바로 이런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만능감이 생긴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현실에서 연애하면 실패할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패배감이 들 수밖에 없죠.
, pp.39-40
공부로 성공한다면 ‘너의 삶은 당당하고, 존경받으며 살 수 있어’라는 명제가 마치 ‘1 더하기 1은 2’와 같은 굉장히 단순한 1차 방정식이 되었어요. 이것이 세칭 486 세대까지, 못해도 75년생까지는 검증됐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지금도 그게 유효한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니라는 진단이 굉장히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세대가 갖고 있던 신화, 판타지, 믿음 체계가 워낙 종교 수준으로 공고하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그곳을 향해 레밍스처럼 달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삶은 이미 고차 방정식으로 바뀌었는데 말이죠.
우리 머릿속에는 보이지 않는 익숙한 길들이 있어요. 이런 걸 암묵지라고 하는데,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내게 익숙하고 편안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요. 예를 들어 낯선 도시에 떨어지면 자신도 모르게 터미널로 가요. 그곳에 가서 도시에 대한 정보를 얻는 거죠. 우리 머릿속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는 거예요. 여기서 486 세대의 암묵지는 ‘공부만이 살 길이다’, ‘배우면 된다’예요. 돌이켜보면 이 세대들이 지난 시기의 출판 시장을 이끌어갔어요. 4백 페이지 되는 사회과학 서적 읽는 것에 훈련된 세대들이 회사원이 되고, 나이 먹으면서 일간지 북리뷰 보면서 책을 왕창 샀어요. 또 자기 아이가 네 살, 다섯 살 됐을 때 그림책을 사주면서 그림책 시장이 만들여졌고, 10년이 지나서 청소년 책을 사주면서 청소년책 시장이 만들어졌죠. ‘공부만이 살 길이다’, ‘열심히 하면 된다’, ‘깊이 파면 길이 보일 것이다’라고 머릿속에 박힌 사람들이죠. 그런데 이제 이 명제의 시효과 다되었다는 증거가 너무 많아졌어요.
, pp.94-95
이전에는 공부가 생애사적 기획을 하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였죠.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는 상황이 되고 있단 말이죠. 그렇다면 이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나와야 하는데,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출현해야 할 그 시점에 다양한 교육이 출현해버린 거죠. 그런데 다양한 교육이란 게 말 그대로 다양한 교육이 아니라 교육이 다양한 영역을 식민화해버린 형태예요. 이게 정말 스쿨링하는 사회인 거죠. 어떤 의미에서는 ‘스쿨’이 문제의 근원이었는데 그걸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는 거예요. 그걸 굳이 학원에 가서 배워야 하는가? 굳이 학교화해야 하는가? 커리큘럼화 해야 하는가? 인성 교육도 그렇죠. 인성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정말 웃기는 말입니다. (…) 가르칠 수 없는 걸 가르치겠다고 하는 것, 저는 이게 정확하게 삶을 식민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p.120
참, 여기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있어요. 틀 밖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성공을 하고 나면 그것으로 죽 살아가면 되잖아요? 그것이 다른 사람들한테 훨씬 더 영감을 주거든요. 그런데 꼭 책을 씁니다. 꼭 학원을 해요. 결국 자신의 성공 방식을 매뉴얼화하는 거예요. 본인이 그러고자 하는 욕망이 있고 또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죠. 결국 한국에서 블루오션은 공부밖에 없어요. 출판계도 레드오션이잖아요. 그런데 출판학교는 잘되고 있어요. 출판계는 망해가고 있는데 말예요. 이런 식으로 지금 공부 산업만 블루오션이 된 거죠.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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