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한가롭고 오만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부자가 전혀 부럽지 않다. 얼마 전 회사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식사를 하며 각자가 만난 부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 사람이 부자 고등학생을 과외했던 이야기로 물꼬를 텄다. 대학생 때 아는 사람에게 소개를 받아 과외 면접을 보러 갔는데 의아하게도 강남의 브랜드 아파트 내 상가 사무실로 부르더란다. 부모가 거기서 장사하겠거니, 그래서 거기로 부르는 것이겠거니 했는데, 알고 보니 그곳은 성악을 전공하는 과외 학생의 연습실이었다. 한 달 월세가 못해도 200만원은 할 그 사무실을 한 고등학생의 개인 공간으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현기증나는 부다. 그 얘기를 듣더니 다른 사람이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마찬가지로 부잣집 학생을 과외한 이야기였다. 어느 달인가 과외비를 받는 게 며칠 늦어서 조심스럽게 과외 학생에게 어머니를 뵐 수 있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단다. 학생은 그 얘기를 듣더니, 선생님 과외비 아직 못 받았느냐면서, 제 지갑을 꺼내더니 “얼마죠?”라며 몇 십 만원을 척척 세어서 줬다고 한다. 선생님, 얼마죠? 분명히 악의는 없었으리라.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첫 직장에 들어가서였다. 직원이라곤 나와 내 또래 여자 두 명밖에 없는 작은 회사였다. 직장은 광화문의 작은 오피스텔에 있었는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침저녁으로 수많은 직장인들이 미어터진다. 아침마다 콩나물 시루같은 지하철을 빠져나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러나 이는 유일한 내 동료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매일 택시를 타고 압구정에서 광화문까지 출퇴근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가 받는 월급은 겨우 120만 원 남짓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사장과 부모가 아는 사이라 아이 사회경험 시키는 겸 보냈다고 한다. 난 그래도 그 동료를 꽤 좋아했다. 그 애가 나에게 친근함을 표한다고 화장품 가게에 들어가, “너 갖고 싶은 거 마음대로 골라. 내가 다 사줄게.”라고 말하기 전에는. 사양하다가 겨우 마스크 팩 몇 개를 받고 왠지 모를 수치심을 느끼며 집에 돌아가던 그 날 나는 사교가 저런 형식으로 이뤄지는 세계엔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모든 부자가 이렇지는 않겠지만.)
이런 나를 대기업 취업 준비하는 동생은 이해하지 못한다. 동생은 대기업에 들어가 승진해 CEO가 되는 게 꿈이다. 나는 섣불리 그에 가치판단을 할 생각은 없다. 나는 돈이 필요하지만 부자는 부럽지 않다. 내가 감히 부러워하는 사람은 가난한 전태일이다. 한평생 안락하게 살지 못하고 급기야는 스물 둘에 몸을 불살라버린 그 전태일이 부럽다. 이 부러움은 전태일을 노동 투사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 봤을 때 느끼는 부러움이다. <전태일 평전>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그것이 그가 가야 할 길임을 확실히 깨달았을 때, 그리고 그 길에 온몸으로 뛰어들게 되었을 때부터 그의 하루하루는 이미 아무리 고달픈 가시밭길일지라도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으며 무의미하게 돌아가는 쳇바퀴가 아니라, 참된 내일의 희망을 향하여 눈부시게 전진하는 참으로 인간다운 보람과 의욕을 되찾아주는, 저항과 창조의 나날이 되었던 것이다.”
생이 꼭 의미를 가질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꽃도 개미도 어떤 사명을 완수하려고 들지 않는 것처럼, 숨을 쉬고 체온을 유지하며 몸뚱아리 건사하기를 애쓰는 게 한낱 생물로서 겸허하고 당연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인간 전태일을 부러워하기를 멈출 수가 없다. 노동운동에 손대지 말라는 주위 사람의 충고에 “안 할 수 없는 일이니 되든 안 되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겠다”고 대답할 수 있는 그의 삶이 너무나도 찬란하게 느껴진다. “안 할 수 없는 일”이라니. 나는 한 번도 그런 당위를 가져본 적이 없다. 청년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철회하라는 교황청의 살벌한 요구를 거절하며, “나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전태일이든 루터든, 그들은 그들이 가야 할 길을 확실히 깨달은 것이다. 도대체 그건 어떤 기분일까?
예전에는 꿈을 가지라는 말이 생의 의미를 찾으라는 말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꿈이라는 말은 전태일과 루터에 갖다 대기에는 꽤나 안이하게 느껴진다. 초등학생의 꿈 2위인가가 건물주라는 뉴스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아니, 물론 꿈을, 생의 의미를, 안락하게 사는 것, 혹은 떼부자가 되는 것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게 이 한국에서 가지기 쉬운 생의 의미인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렇게 교육받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그게 이 사회에서 실질적인 생명 유지 장치로 작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 상가 하나를 통째로 임대해서 연습실로 쓴다는 그 아이는 전태일보다 수십 년을 더 살 것이다.
그래도 나는 전태일이 더 부럽다. 그건 분명 이상하다. 매일 택시타고 강남에서 출퇴근하는, 취미로 일을 하는 사람보다 전태일을 부러워하는 데에는 뭔가 설명이 필요하다. 전태일이 획득한 생의 의미는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전태일은 마주치는 가여운 사람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이면에 있는 부조리를 인식하고, 그걸 부득부득 정직한 글로 썼다. 글로 쓴 자신은 말보다 쉽게 사라지지 않고 가시처럼 스스로를 옥죄었을 것이다.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그렇게,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이’ 도달하게 된 생의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게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가치라고 느낀다. 이제까지 왜 그런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냥 남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은 허세 때문인가 싶기도 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이번에 <전태일 평전>과 <글쓰기의 최전선>을 보면서 조금은 다른 답을 알 것도 같다. 회피하지 않고 성실하게 세상에 감응해온 어떤 사람이, 견디지 못해 이윽고는 세상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했었으며, 종국에는 내가 그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주어진 혜택을 누리기만 하는 삶에서 나아가 나도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이어 살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갑자기 스스로가 조금 기특해지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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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을 읽고 쓴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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