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못 자고 전전반측하고 있다가 일기로 생각을 풀어내면 좀 잘 수 있을까 하여 오랜만에 아이패드로 일기를 쓴다.
예전에 내 사주를 보면 항상 성공할 직업 중의 하나로 음식 장사와 함께 부동산 중개업이 나왔다. 어렸을 땐 절대 그런 부당한 이득은 안 취하겠다며 진저리치면서 싫어했는데 요샌 나쁘지 않을지도, 를 넘어, 잘 맞을 듯도, 라는 마음이 든다. 진심으로 공인중개사 시험은 어떨지 고민해보고 있다. 그게 영 내키지 않는다면 당장 월세 나가는 것도 없겠다, 돈을 벌지 않으면 죽는 것도 아닌데 대충 퇴직금 채워지면 여포는 잠시 맡겨놓고 이곳저곳 발자국도 남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여행이나 다닐까도 싶다.
그런 적당히 안분지족하며 살고픈 소시민의 마음과 함께 갈 곳 없고 분수에 넘치는 호전적인 마음이 공존하고 있다. 그 대표적으로, 나는 못하겠지만 누군가 훌륭한 사람이 새 인류를 창안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원한다든가. 누군가 이쯤에서 딱 끊고, 미래 세대를 위한 건전한 윤리를 새로 선포하고 계승할 지난 세계의 상식들을 취사선택하는 일을 해 준다면 그곳에 힘을 보태고 싶다. 근 30년동안 지구에서 견뎌온 입장에서, 이 인류가 멸종을 면하고 내가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면 기대할 만한 미래가 단 하나도 없으리라는 걸 거의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짧다면 너무 짧은 기간이지만 안온한 대학의 요람이 아닌 실세계에서 살아온 몇 년간의 체험학습을 통해 나는 이 세계의 소위 ‘큰물’ 그러니까 메인 무대가 오르고 싶은 마음이 안 들 정도로 경멸스럽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 큰 무대는 고상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려운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뻔뻔하고 우격다짐에 가까운 연기를 성의없이 허허호호껄껄 설렁설렁 얄팍하게 시전하는 장소 같다. 거기에 무리해서 끼기 위해 노력하다가는 정신차리고 보면 똑같은, 그렇지만 훨씬 가난한 모습으로 늙어 있을까봐 무섭다. 사실 그런 또래를 종종 본 듯하다… (무대 아래서 태어난 자들이 무대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까마득하게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하는데 그것만으로 벅차서 새로운 비전과 기획을 제시할 여력이 없나보다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명멸하는 대안적 소무대를 찾아,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신경쓰지도 않고, 잘해봤자 성가시다는 정도로 대응하는 큰 무대를 조롱하며 살기에는 그 안에서 쉽게 발견되는 패배감, 우울증, 그리고 발악하듯 내뿜는 자의식들로 인해 숨이 막힌다. 폐쇄되고 완결된 우리에 갇혀있는 연약한 멸종 위기의 초식동물과도 같은 섬세한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견딜 수가 없을 정도로 애잔하여 도망치게 된다. 그리고 죄책감을 안고 두 무대 사이의 어딘가에서 갈팡질팡대면서 대안 무대의 헌신적인 사람들을 응원하는 정도의 자위로 그치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조금씩 모두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세계를 바꿔나가는 것만이 해답일지도 모르는데. 그렇지만 이 세계는 너무나 힘이 세다. 좋은 게 좋은거지 풍의 나른하고 또 천박한 문법은 너무나 강력하다. 그 문법을 써서 간신히 일이 되게 만들면 결국 그 문법에 귀속되고 오염돼 있기 일쑤다.
그래서 정말 누군가가 나타나 이 세계의 모든 기준을 단번에 재정의해서 구태가 멸종한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면 좋겠다는 꿈을 꾼다. 인류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는 막연한 긍정감도 있다. 어쩌면 이 마음은 세계 보편 종교를 바라는 전근대적인 마음과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선량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초인아 오너라, 이렇게… 물론 군주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란 마키아벨리의 패망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게다가 적어도 한국에서 큰 무대에 올라 있는 주요 등장인물이라면 일단 그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것부터 글러먹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겠지. 과연 건전한 시스템을 만들 초인이 나올까? 만약 없다면 어떤 양식을 만들어야 할까? 비전을 제시하는 주체가 한 개인의 캐릭터나 종교가 되지 않으려면 어떤 양식이 나올 수 있을까?
너무 대단한 문제라서 내가 생각할 깜냥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잘 모르겠고 당장은 세계가 견고하게 무장하고 있으니까 일단은 좋은 직업 기능인이 되어 놔야겠다. 사실 요새 직업에 다소 환멸을 조금 느껴서 피로하다. 당장 할 수 있고 나름 좋아하니까 다시 힘을 내서 비위가 견디는 한도 내에서 노력해 봐야지. 또 언제 어떻게 이 기능을 써먹을 지 모르니. 어휴 근데 이런 마음이 들다가도 늙어서 남에게 민폐끼치지 말고, 그냥 다 그만두고 몇십년에 걸쳐 서서히 아사해 갈까 싶기도 한데…… 음 이제 졸린 것 같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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