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편집자의 일은 무엇일까

일의 가치는 무엇으로 가늠해야 할까? 개인적으로도 어떻게 일의 가치를 평가할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혹은 노력해야 한다는 향상심을 갖기 위해서라도. 지금 다니는 회사 내부의 칭찬과 질책으로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평가하기에는 이곳이 업계 대비 다소 특이한 지점이 있고(모르겠다 이것도 이제 잘…), 다 떠나서 근저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인지하는 기준이 있어야 할 것이기도 하고.

평가 기준으로 두 가지 큰 계열이 떠오른다. 첫째는 그 일의 사회적 효용이고 둘째는 그 일 자체다.

책 편집자라고 할 때 사회적 효용을 중심으로 가치를 매긴다면 글쎄, 만드는 책이 얼마나 좋은 책이냐에 달려 있을 듯하다. 그런데 이 경우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그 책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 정도(를 아주 명백하게 계량화하긴 어렵지만 독자 수, 메시지의 파급력 등과 긴밀히 연결되지 않을까)와 종이나 에어컨 전력 등 책을 만들기 위해 낭비하는 사회적 자원을 비교해 봤을 때 후자가 더 크지 않은지 면밀히 따져봐야 하겠다.

자 그런데 이 경우 사실 가장 큰 고민은 ‘좋은 책’이라는 부분이다. 여기서 좋은 책이라고 하면 그 내용이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컨텐츠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단 회사를 다니면서 그 내용에 100% 확신을 가질 책을 만들 때가 거의 없을 듯하고(일단 회사에서 시키는 책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다가 책이 받아들여지는 이 사회의 방식이 매체가 아닌 기호품이 되어버린 것만 같아 사회적 효용을 따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피규어’는 없을 것 같잖아? 책도… 마찬가지로 그런 게 아닐지…

게다가 이 좋음의 기준이 내게 있는 건 필연적인데, 그럼 나는 나의 신념 또는 취향을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강요하고 있는 걸까? 그것도 내 목소리가 아닌, 어떤 저자를 통해서? 아무리 책임편집이라는 말을 쓴대도 결국 글의 책임은 저자에게 있는데, 나는 어떤 권리도 의무도 없는 그런 신념/취향 리스트를 누군가에게 내던지는 행위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무튼 조금 격앙돼 버렸지만 사실 사회적 효용 문제는 오래 고민해 왔던 거고 끝끝내 결론나지 않을 종류라서 이쯤에서 접고 요새 편집 일 자체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야기들을 좀 들어서 혼자 타격을 좀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다.

오늘은 꽤 오래된 경력 편집자 분이 ‘편집자는 창녀와 같다’고 말한 어떤 일본 출판평론가?의 이야기를 했다. 또 얼마 전에는 팀원 중 한 명이 예전 직장에 다닐 때 또 꽤 오래된 편집자 한 분이 ‘편집자는 떼를 잘 써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둘 다 일 자체에 대해 비슷한 성격 규정을 하고 있다. 편집자의 업무는 최대한 스스로를 낮추며 여러 권리자들을 달래는 일이다. 낮춰야 하는 이유는 내가 책임질 내 권리가 없기 때문일 테고, 결국 내 것이 아닌 걸 다루기 위해 소유자들을 달래야 하는데, 이게 그럴듯한 말로 하면 협상과 설득이지만, 결국 그들을 어떻게 요리할 수 있는지, 떼를 쓰고 애교를 부리고!!! 등으로 변환되겠다.

아무튼 이 규정에 따르면 그런 지난한 과정을 통해 원하는 걸 얻어내는 게 편집자의 ‘일’이라는 거다. 그걸 잘하면 잘할수록 가치가 있는 편집자고. 실제로 각종 어이없는 저자들, 외주처들을 만나 현란한 유혹의 기술을 동원해 의도를 관철시켰던 숱한 경험을 가장 중요한 커리어로 생각하는 편집자들이 많긴 한 듯하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편집자 업무의 핵심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그 일이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은 듯하다.

편집자 일 자체에 대한 또다른 정의도 있을 수 있다. 협의의 편집, 그러니까 책의 물성을 고려해서 완성도 높게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교정교열도 잘하고, 디자인을 척척 제시해 내고, 카피든 각이든 능란하게 잡고 세우고… 이 정의에 의하면 도제로 출발해 장인이 되는 게 일의 가치가 올라가는 루트일 것이다.

회사원으로서는 여기에 방점을 두고 일하는 게 좋을 듯하긴 하다. 그런데 사실은 이 부분에 방점을 두고 싶어도 실제로 하는 일의 성패가 여기에 달려 있지가 않다. 이 회사가 유독 심하긴 하지만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로 편집자들이 어떻게 보면 참으로 다종다양한 취향과 안목에 휘둘리고 있다. 정해진 객관적 기준이 거의 없다시피 한, 늘 새로운 사람의 새로운 기준이 맥락도 이유도 없이 돌출하는 상황에 협의의 편집자로서도 성장은 그냥 우연에 가깝다.

설령 성장했다손 치더라도 성장에 자부심을 가질 수 없다(왜냐하면 그것은 우연의 선물이니까 어떤 노력으로 이런 가치의 상승을 이뤘노라고 할 수가 없다). 사실은 성장이 아니라 상황 대처력 상승에 불과할 수도 있다. 무엇이 상승하건 지극히 개인적인 안목과 취향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이 지점들이 분명 아무리 협의의 기능인으로 편집자를 정의하더라도 기필코 시무룩해질 수밖에 없는 부분으로 남을 것 같다는 불길함이 요새 머리를 계속 떠돌고 있다… 그냥 주변 사람을 조금이나마 즐겁게 해 주면서 살아가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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