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내가 살아갈 삶이 재미없는 농담과 같으며, 여러모로 탐탁찮은 몸뚱아리를 부여잡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간신히 견디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긍정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실제로 그 내구력을 갖췄는가와는 역시 다른 문제다. 정신적이든 신체적이든 폭력은 당해도 당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왜 이렇게 얻어맞을 때마다 분하고 일어나기까지 오래 걸리는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다. 복원력이 형편없다. 어떻게든 별 거 아니라고, 다들 이렇게 산다고, 익숙해져 보려고도 했지만 되다가 안 되다가 너무 잦은 실패를 겪어서 혼미할 뿐이다.
그 사소한 실패 중의 하나가 또 얼마 전에 있었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소개팅을 했다. 너무 관리(?)를 못하고 살고 있어서 별 기대 안 하고 나갔는데 이상하게도(?) 상대방이 나를 마음에 들어했던 것부터 뭔가 불길한 징조였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데이트 계획에 집착하는 것부터 괴이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 후 빠르게 두 번 더 만났는데 결국 이 자와 성숙한 문명인으로서 교류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 세상엔 정말 별 사람 다 있다. 어떻게 그 자가 그 직업을 갖고 있는지 개탄할 만한 일이다.
소개팅을 한 건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에 친구와 점집에 갔는데 일갈을 들었기 때문이다. “희연이 너! 얼른 남자를 만들지 않으면 3년 뒤에나 생긴다!”라나? 묘하게 그 말이 계속 떠올랐다. 최근 내 인생에 대해 왈가왈부 했던 말들 중에서 가장 확고한 믿음으로 내뱉는 언어였다. 왜 사람들이 이상한 종교에 가입하는지 알 수 없는데 어쩌면 이런 느낌일 수도 있겠다. 너무, 너무너무 아무것도 모르겠는 삶 속에 던져져 있는데 그 와중에 자꾸 얻어맞기만 하는 거다. 헤매서 어지럽고 맞아서 어지럽고 그저 빙글빙글 부유하는 와중, 절대 배신하지 않을 확고한 표지 하나가 보이면 갖고 싶어지는 게 아닌가? 물론 세계의 모든 신비한 힘에 대해 회의하며 살아온 지 어언 30여 년, 쉽사리 점을 믿게 되지는 않았지만 깔깔대며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해 줬더니 소개팅 남자를 소개시켜 주는 식으로 기능했으니 뭐 좋은 게 좋은 건가. 흠.
아까 이 망측한 소개팅남 이야기를 하며 팀원들이랑 수다를 떨어서 그런지 몇몇 애인들이 뇌리를 점령하고 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역시 마지막의 사람이다. 우리 연애하자 하면서 마지막으로 만났던 남자와 헤어진 지 어언 1년 이상이 됐다.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연애 상대로서 상상할 수 있는 사회적 단점을 고루고루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쩜 이런 사람을 만났는지 나는 내 끌림의 방향이 참 신기하다. 가끔 큰 길에서 마주치는데 내가 조금만 더 대범한 사람이었다면 침을 뱉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그와 쌓은 조금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공간에 이제 잘 가지 않는다. 연남동이 옛날에 비해 많이 핫해져서 좀 다른 느낌이기도 하고.
그 전의 남자는 게임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이상하게 그 당시에 게임 회사 사람들을 이곳저곳에서 만나곤 했다. 그는 게임 회사에 다니지만 개발자는 아니었고 그냥 관리직이었다. 회사가 판교에 있었는데 늘 통근 버스를 타면서 길게 전화를 하곤 했다. 전화할 때마다 너무 재미가 없어서 굉장히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만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자연스럽게 횟수도 줄었다. 추운 날이었는데 사람이 빽빽하게 들어찬 스타벅스 집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다. 침묵, 단어, 침묵… 마지막조차 정말 현기증나게 재미가 없었다. 아무튼 이 정도가 사회생활 시작한 후 대략 정상적인 연애의 상태에 잠시나마 있었던 사람들인가? 전남친 중에 혹시 생각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봐 무섭다…
의식의 흐름에 따른 다른 이야기지만, 원래도 있었던 그 치매 증상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어서 진지하게 해결책을 찾고 있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그래야 뇌에 산소가 공급되고 살이 빠지고 활기찬 하루를 보내고. 그러나 늘 그렇듯 자신의 멍청함을 아는 것이 멍청함을 극복하기 위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고통을 아는 것이 고통의 정도를 줄여주지 않으며, 다가올 위험을 아는 것이 예방으로 이어지지 않고, 아는 만큼 보이지만 보인다고 행동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나는 이 문제의 근본은 여유의 유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여유는 부자에게서 나오지.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풍요로워야 당장 무언가를 착수할 동력을 가질 수 있다.
빨리빨리 사회에서 아무리 돈이 많다 한들 근본적인 빈곤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어쩌면 비교적 좋은 환경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딘가에 쫓기지 않고, 그래도 아직 어떠어떠한 책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그건 굉장히 먼 미래에 도달하지 않은 희망으로 있는 것이다. 그나마 내가 생산적으로 하는 것들은 이 도달하고 싶은 미래를 향한 욕망에서 나온다. 자율의 영역이라는 건, 그러니까 빈 공간이고 여유라는 건 아무튼 참 중요한 거다. 당장의 아웃풋으로는 절대 반영되지 못할, 그런 의욕이 만들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제발 내 태도를 뭐라 하지 말고 내가 의욕이 생길 수 있게 관리해 줬으면.
몇 개의 플랫폼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 많은 선례들이 실패한 걸 봤고, 그 훌륭한 플랫폼들이 실패한 원인을 모르겠고… 그냥 이 한국의 시장이 너무 작고 조잡한 게 원망스럽고… 그래도 어쩌겠나. 여기가 내가 서 있는 곳인 것을. 여기서부터 시작해야지. 그 일환은 아니지만 얼마 전에 다시 잡지를 시작하기로 결의했고 얼떨결에 편집장이 되었다. 미국에 가있는 ㅇㅈㅇ이 해야 할 것을… 소소하고 대단하게 애써 보겠다. 안 되면 뭐. 힘들고 말겠지.
사실은 여러 사회 이슈와 그리고 대자보에 대해서 몇 마디 쓰고 싶었는데 정리가 덜 되서 조금 자제해야겠다 싶다. 다만 답답하다. 법도 생도도 회사도 마을도 자본주의도, 심지어는 종교도(휴 요새 편집중인 원고라서 자동 튀어나온다) 늘 현재진행형인 것들이다. 완벽한 형태로 계시된 건 아무것도 없다. ‘이건 이래야 해!’ 라는 절대적인 잣대처럼 들이대기엔 너무 부족한 발명품들이다. 늘 깁고 부수고 재편집해야 할 인간의 도구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인간이 먼저다. 편의와 안전을 위해 사용하던 도구가 그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괴물이 되었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대화가 먼저다. 지난한 과정이겠지만, 절대적인 기준은 없기에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참 피곤하다. 일과 사랑, 취미생활을 챙기기도 바쁜데 뭐가 이렇게. 아 사람들 이래서 여유가 없나.
요새 아 피곤해. 라는 말이 입에 붙었다. 실제로 면역력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온갖 더러운 염증에 걸렸다 겨우 나았다. 피곤해라고 말할 때마다 피곤 지수가 올라가고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된다. 내일은 산행을 한다. 산은 그냥 쫌 자연으로 놔 뒀으면 좋겠다. 정말,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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