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황현산 “다르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주간경향> 1128호)
“모든 학문과 생각 체계는 자기들의 삶의 전통과 삶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식민지 경험 때문에 한국인들에겐 모든 게 강제적으로 주입되었습니다. 이게 실제로 우리에게 아주 큰 상처이지요. 가장 중요한 건 근대화를 자주적으로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식민지를 통해서 근대화된 게 아주 큰 비극입니다. 자주적으로 자기 삶을 개선할 기회를 빼앗겼습니다. 밖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어떤 충격만 받으면 옛날로 돌아가려는 성향이 있어요. 민주화 운동 하는 사람이 족보 따지고, 진보적인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학연·지연 따지는 모습을 저는 너무 많이 봐 왔습니다. 자유·평등의 개념이 내 삶 속에서 성장한 것이 아니니까 헛것으로 떠돌 뿐입니다. 인문학 열풍도 마찬가집니다. 지젝이 한마디 하면 다 그리로 쏠려가고…, 간단한 외부적 충격만 있어도 갈피를 못 잡고 휩쓸려 갑니다. 자기 경험을 통해서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지젝의 이론을 공부했으면 그 이론을 자기 경험 속에서 이해하고 그 이해를 넓혀 또 다른 자기 사고로 확장시켜야 합니다.”
“사물의 현상 밑으로 내려가서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면 모든 게 다 지겨워집니다. 어떤 사태의 깊이를 파악하는 건 힘이 드는데 일베가 되면 그 힘이 면제됩니다. 일베는 젊은 날의 덫이 되기 쉽습니다. 그들을 가만히 보면, 사람들에게 싸움을 시킴으로써 정말로 지탄받아야 될 사람들이 피해가는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이념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이 엉성한 이념일수록 더 매혹적입니다.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들, 생각을 겁내는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생각 하나를 붙들고 무슨 짓이든 하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바로 일베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자신감이 없고 비열하기 때문에, 여자와 같은 약자들을 학대하는 데서 가장 손쉬운 패악질을 발견합니다. 패거리 의식은 이 약자 괴롭히기를 이데올로기로 만들고, 옆에서 부추겨주는 사람이 있으면 급기야 애국질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패악질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혼자 남으면 자괴감에 빠집니다.”
2. 왜 간다라 미술에 매료되는가 (<조선비즈> 2015년 7월 4일자 뉴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저를 제일 난처하게 만드는 질문이 석굴암 불상이 간다라 영향을 받았느냐는 겁니다. 교과서에 그렇게 많이 쓰여있죠. 하지만 거기에는 무리한 점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람 얼굴이니까 비슷해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 비교해 보면 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간다라 미술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심리 이면에는 우리가 간다라 미술을 훌륭하다고 여기는 정서가 심리 근저에 깔려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석굴암 불상의 높은 가치를 적절히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것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불상이 처음 만들어진 원류가 간다라에 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모든 불상의 뿌리가 간다라에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양식으로 말하자면 석굴암 불상은 오히려 당나라 불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겠습니다. 당시에는 살지고 푸짐한 게 복스럽고 원만한 모습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동과 서를 이야기할 때 융합, 교류를 말하고 둘 사이의 관계를 미화하거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상당한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심미적인 인식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모든 말이 그렇듯이 간다라라는 말이나 어휘에 우리의 가치 판단이 들어가 있지요. 마치 간다라에 뭔가 있는 것처럼 생각들을 해요. 그러면 불교 미술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처럼 느끼는 것도 같고.(웃음) 불상을 처음 만든 곳은 간다라라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거기에서 여러 유형이 창안됐어요. 손을 뺨에 대는 반가사유상이라든가. 그 점에서는 간다라가 불교 미술의 원류라고 할 수 있고, 모든 불상이 간다라에서 나왔다고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영향’이라고 할 때는 어느 정도 직접적인 연관성이 분명하게 있을 때 그 말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연관성이라고 한다면 간다라보다는 직접적으로 당나라 불상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나라 불상은 간다라가 아닌 갠지스 중류의 불교 미술과 관계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절반이 놀고먹어도 번창하는 개미 미스테리 (한겨레 한겨레 환경 전문 웹진 – 물바람숲 2015년 7월 6일자)
비활동 개미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개미가 생물로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면, 그런 현상이 무언가 진화적 이득을 가져다 줄 가능성이 있다. 이제까지 이들은 예비 일꾼이거나, 이기주의, 또는 무리 사이의 소통 등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의 기능이 있다는 가설이 나와 있다.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는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독일 로겐스부르크대 개미학자 토머 크자케스와 인터뷰에서 이들 노는 개미가 예비군 노릇을 할지 모른다는 가설을 소개했다. 그는 “명백히 게으른 개미는 예비 전사가 될 수도 있다. 이들 개미에게는 노예를 획득하기 위한 습격이 매우 흔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샤르보뉴의 연구에서 비활동 개미가 다른 일개미보다 크고 동료와 소통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결과는 행동으로서의 비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었으며, 그것이 어떻게 진화하게 됐는지가 후속 연구의 과제”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4. 남극의 ‘물찬 제비’ 펭귄, 자력으론 북극 여행 불가능
만약 인간이 펭귄을 북극 지방으로 옮겨 놓으면 펭귄은 거기서도 살 수 있을까. 못 살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천만 년 동안이나 남반구에서 다른 생태계에 피해를 주지 않고 또 사람에게도 사랑을 받으며 잘 살았던 펭귄이 북극 지방으로 강제 이주를 당한다면 그 순간부터 펭귄은 부성애의 상징이 아니라 황소개구리·붉은귀거북·큰입배스처럼 환경을 파괴하는 외래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할지도 모른다. 펭귄은 그냥 남반구에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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