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2015년 봄

– 언제나 그렇듯이

투정부릴 곳이 없어지면 이곳을 찾게 된다. 거의 아무도 보지 않지만 어느 누군가는 가끔 보아 줄 일기장을 갖고 있다는 건 꽤 좋은 일인 것 같다.

 

– 유목생활

회사에서도 층을 옮기고 얼마 전에는 집까지 이사를 했다. 고향이랄 법한 것을 가진 적이 없던 근 30여년의 삶이 드디어 떠나는 것을 익숙하게 만든 걸까, 늘 갖던 일말의 감상도 없이 담담하게 짐을 쌌다. 오직 무거운 것은 몇 안 되는 생물들 뿐이다.

 

– 새 집

집은 지나치게 크다. 곧 익숙해진다고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책임지기 싫을 정도로 과분하다. 사람을 셋 이상 초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은 참 신나는 일이지만 사실 내 깜냥엔 그마저도 지나치게 많은 숫자 같기도 하다. 이제 일주일이 넘었는데 텅텅 큰 집이 이상해서 혼자 있으면 TV를 반드시 켜 놓는 새로운 습관이 생길 정도로 좌불안석하고 있다.

 

– 회사

회사는 사람이 너무 자주 바뀌고 일이 정리되지 않아서 피곤하다. 육체가 피곤한 건 어떻게든 하겠는데 정신이 피곤한 건 치명적이다. 점점 개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끊임없이 자기 세뇌를 해 가며 일에 의욕과 애정을 갖고자 갖은 노력을 다 하고 있는데 어떤 날은 성공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실패하기도 한다. 문제는 점점 실패의 날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이윽고 피곤이 극에 달해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만들고 있는 책이 나올 때까지는 그 날이 안 왔으면 좋겠다.

 

– 작아지는 중

점점 존재가 사그라드는 것 같다. 원래도 적어도 물질적인 부분에서는 욕심 같은 게 그닥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욕망도 느껴질 때가 별로 없고 그냥 전반적으로 엔트로피가 줄어드는 기분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건 아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로 집착하고 있는 몇 가지를 수행해 내는 것만으로도 그저 살아갈 날이 아득할 뿐이다.

 

– 봄이 가고

어김없이 야구도 시작됐고. 오랜만에 간 기아전은 졌지만 경기 내용은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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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까지도 나의 팀은 2013년의 넥센에 머물러 있음. 다시는 그 정도로 사랑할 야구팀이 없을 거라는 마음이 해가 갈수록 분명해진다.

7yxxl4V879+물론 2015년의 넥센도 화이팅.

 

– 추모같은 것

친애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기분은 씻어낼 수 없는 치명적인 패배감 같은 것이다. 모든 기회가 닫힌 것이다. 후회도 사과도 실질적으로는 내 자신을 위로하고 반성하는 이외에는 의미가 없다. 그 죽음으로 교훈을 얻고 싶지가 않다. 교환할 수 없는 것을 교환하는 것만 같다. 그냥 죽음은 내 얄팍한 삶과 차원이 다른 거대한 자연 현상이며 나는 그를 해석할 길이 없다는 것에 절망하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진짜 해원 같은 게 가능하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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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봄” 글의 댓글 2개

  1. 챨리

    많이 지쳐보이는구나.. 금방 삶이 즐거워 죽겠다는 순간이 찾아와준다면 좋을텐데..!!
    기운내어요~

    1. 히연

      고마우이. 요새 왜 이렇게 마음이 오락가락한지!
      네 얼굴이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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