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정에 대해 생각한다

요새 정 없단 소리를 참 많이 듣는다. 정이 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니 그런갑다 한다.

나는 옛날부터 삐딱선을 타는 구석이 많았다. 누군가 선의를 베풀어도 그 선의에 합리적인 이유를 붙이지 않으면 부담스러워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용돈이 그렇다. 다 자라서 취직하고 월급을 받게 된 이후로 나는 부모님이 용돈을 주시면 진저리를 치며 싫어했다. 물론 학생 때도 용돈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질색하긴 했지만, ‘부모님은 나를 낳은 책임이 있으니까, 용돈도 육아 비용에 포함된 거겠지’라며 겨우 납득했다. 그런데 내가 벌어먹고 사는 지금은 그 돈에 대해 무슨 이유를 갖다 대야 할 지 모르겠는 것이다.

부모님은 그냥 받으면 된다고 한다. 주고 싶어서 주는 거라고. 주고 싶어서 준다고? ‘나중에 다 돌려받으려고 그러시나?’라고 악의적 해석을 하기엔 내 부모님은 참으로 폐 끼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라 절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지 않다.

대조적으로 회사에서 받는 월급을 생각해 본다. 나는 사장님에게 어떤 부채감도 갖고 있지 않다. 내 노동력을 주는 교환물로 돈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기본소득이라고 했을 때, 용돈과 월급 중에서 굳이 비슷한 쪽을 고르자면 용돈에 가깝다. 그래서 실은 나는 그것이 꽤 부담스러울 것 같다. 왜냐하면 날 낳은 세계가 내 존재에 기뻐 ‘용돈’을 안겨 준다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냥 받으면 된다고. 아니, 그게 되나? 다른 사람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정말 용돈을 당연하게 챙겨 받나요? 그렇지 않다. 나는 그 용돈의 형태로 드러난 부모님의 애정이 부담스럽지만, 어떻게든 조금이나마 돌려드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어떻게든 유무형으로 잘 해드리려 하면서.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럽지만 그래도 받은 사랑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면서, 그 부담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담이지만 빚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느껴야만 하는 자연스러운 부담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이 구체화된 형태일지도 모른다.

 

기청넷 기본소득 칼럼을 의뢰받아서 뭘 쓸까 고민하다 이런 논지의 글을 쓰고 있었는데 ㅠㅠ 칼럼 기획의도를 뒤늦게 파악해서 주제를 급하게 선회… 바보… 아무튼 정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기꺼이 민폐를 주고받고픈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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