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 편집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1 스크랩

서론)
물질생활은 일상사(routine)라는 성격을 띤다. …
오스트리아의 대공 막시밀리안이 식사하는 모습을 그린 1513년 그림 -> 음식에 직접 손을 대고 먹고 있다. 루이 14세는 손가락으로 먹으라고 손자를 가르침.

제1장 수의 무게)
인구수는 그 자체가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이다.
서유럽의 경우에 1100-1350년에 걸친 장기적인 인구 증가, 1450-1650년의 또 다른 증가, 그리고 다시 1750-년 이후의 새로운 증가, 그리고 그 시기 사이마다 있었던 인구 감소(특히 14세기 흑사병은 심각한!)
아메리카 인디오 인구의 무시무시한 감소: 식민지 노역, 전쟁도 원인이었지만 인구학적 취약함도 있었다. 우유 생산 가축이 없어서 가임성이 떨어졌으며,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들어온 질병에 무방비 상태(천연두 등)였음.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 인구가 두 배가 됐다. -> 인구가 늘어난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 이루어진 것이 확실하다.
팽창은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이다. 왜 같은 시간에 ‘지리적 콩종크튀르’가 작용했는가? —> 기후의 변화?
15세기 독일에서 가장 큰 도시였으며 수상 운송업의 교차로이고 대로들의 교차점이었던 쾰른도 인구가 고작 2만명에 불과했다. 이미 인구 과밀로 인한 도시의 긴장이 뚜렷하게 고조되어 있었다고 하는 시기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인구수가 적어도 40만, 아마도 70만에 이르렀던 듯한 16세기의 이스탄불에 대해 말하면 …
영국 청교도 혁명(영국 내란)의 결정적인 ‘롱 마스턴 전투’ 역시 왕당파 15000명, 의회파가 27000명에 불과했음
레판토 해전(1571년 신성동맹:오스만)에 참여한 사람들 10만명…;;;
1600년경의 세계 인구가 오늘날 인구의 1/8
인구 과잉은 사람의 숫자만이 아니라 동시에 가용자원의 함수이다.
18세기에 가서야 비로소 삶이 죽음을 이기기 시작했고 규칙적으로 죽음을 앞서갔다.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치세 말기에 빈민법이 나왔는데 빈민과 달갑지 않은 자들을 위한 기관에서 강제노역을 하게 되었다.
17세기 소빙하기
매독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이후 급증했다. -> 이 병은 바르셀로나에서 콜럼버스의 귀환을 축하하는 축제가 열린 때(1493)부터 끔찍한 증상을 드러냈으며,
흑사병 자체가 유럽에 도달한 것은 13세기가 아니라 늦어도 11세기 : 1346년에 유럽 전체를 굴복시킨 흑사병은 몽골의 팽창의 결과이다.
=== 이 앙시엥 레짐의 주요한 특성들을 요약하면,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갑작스러운 재앙만큼이나 강력한 단기적 회복능력일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비록 느낄 수는 없지만 계속 보상이 이루어져서 결국 최종 승리를 거두게 된다.

제2장 일상의 양식: 빵

Category :

댓글 남기기